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코워킹 라운지 ‘워크앤힐’ 전경. 이곳은 코오롱 이웅열 회장의 장남 이규호 코오롱FnC 전무·리베토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사진 커먼타운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코워킹 라운지 ‘워크앤힐’ 전경. 이곳은 코오롱 이웅열 회장의 장남 이규호 코오롱FnC 전무·리베토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사진 커먼타운

문 안으로 들어서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차들로 북적이는 도산대로에 있다가 순식간에 낯선 외국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곳곳에 있는 큰 창문을 통해 바깥 공기와 햇살이 여과 없이 들어왔다. 초록빛 싱싱한 식물들이 공간 이곳저곳에서 청량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차를 마시기도, 컴퓨터를 켜고 일에 몰두하기도, 지나가던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 ‘이국적’인 공간은 코오롱가(家) 4세가 운영하는 공유형 주거 공간 ‘커먼타운’의 코워킹 라운지 ‘워크앤힐’이다. 하루 1만5000원을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원하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일할 수 있는 오픈데스크에 회의실까지 갖추고 있다. 하루만 이용해도 물, 커피, 차 등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

재벌 3·4세들이 경영 능력을 검증할 시험대로 트렌디한 영역을 선택해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는 공유 비즈니스, 스타트업, 벤처 육성 등 ‘핫’한 영역들이다.

커먼타운은 코오롱의 계열사 리베토가 운영하는 공유주거 브랜드다. 이규호 코오롱FnC 전무가 대표를 맡고 있다. 압구정, 성수, 역삼, 청담, 삼성 등 서울 요지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꼬마빌딩, 오피스텔, 주택 등의 공간을 리베토가 임대해 공유주거 공간으로 꾸미고 이를 일반인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보증금 300만원에 주거 타입별로 월 79만~159만원 정도 이용료를 낸다. 입주자들은 공용 공간, 다양한 내부 프로그램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워크앤힐은 입주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1984년생으로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입사한 이 전무가 2017년 리베토로 공유주거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사업 목적보다는 경영수업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공유주거 사업 자체가 생소한 데다, 강남 등 땅값이 비싼 지역을 중심으로 고급 주거 시설을 만든 탓에 이윤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사업은 순항 중이다. 2017년 3개였던 커먼타운 지점은 2019년 5월 기준 33개까지 늘었다. 지난 2월부터는 싱가포르에도 법인을 만들어 6개 지점을 열었다. 현재 421개인 베드 수를 1000개로, 싱가포르 지점은 21개로 확장할 계획이다.

가업과 연계해 첨단 기술 육성에 열의를 보이는 인물도 있다. 한화가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다. 그는 따로 나와 사업을 꾸리기보다는 그룹 안에서 첨단 금융 기술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그의 형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한화의 첫 번째 축인 방산·화학 사업을 맡고 있고, 김동원 상무가 두 번째 축인 금융을 맡으면서 어느 정도 후계 구도의 밑그림이 그려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1985년생인 김 상무는 2014년 한화생명에 합류한 이후 주로 디지털·혁신금융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디지털팀장, 전사혁신실 등을 두루 거치다가 지난해 11월 미래혁신·해외사업부 부문장을 맡으며 처음 임원이 됐다.

김 상무는 특히 핀테크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문장이 된 후 1월에는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한 다보스포럼, 3월에는 금융계열사 대표들과 ‘핀테크 업계의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라고 불리는 ‘머니2020아시아’에 참석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특히 머니2020아시아에서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태국 최대 그룹 CP 등과 아시아 핀테크 시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협업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 상무가 부문장으로 있는 미래혁신부는 ‘드림플러스63 한화생명 핀테크 센터’를 운영하며 핀테크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다.

현대가 3세들은 벤처·스타트업 지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봐, 해봤어?’로 유명한 할아버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창업·도전 정신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녀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 그는 2013년 재단에 합류한 이후 2014년 국내 스타트업 창업지원센터 ‘마루180’을 열었다. 창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교류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왕회장’ 창업가 정신으로 스타트업 육성

개관 이후 5년간 이곳을 거쳐간 스타트업만 182개에 달한다. 지금은 네이버에 인수된 명함관리 앱 ‘리멤버’를 만든 드라마앤컴퍼니, 자유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 해외송금 서비스 모인, 핀테크 업체 레이니스트 등이 마루180 출신이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다.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 벤처캐피털 캡스톤파트너스도 마루180에 입주해 있다. 마루180에 따르면 장기 입주 스타트업 62개 팀 기준으로 입주 기간 투자 유치 금액이 3억2000만원에서 16억원으로 5배 증가했다.

정 상임이사는 최근 들어 공식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개관 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공식석상에 선 이후,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 종종 나서고 있다. 6월 20일 여수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생태계 콘퍼런스에 패널 토론자로도 참석한다.

정남이 상임이사와 친사촌지간인 정경선 루트임팩트 대표도 있다. 그는 정몽윤 현대해상화재 회장의 외아들이지만, 2012년부터 사회적 기업을 발굴하고 키우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학습장애, 학습지연 아이들의 인지능력 개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교육 스타트업 ‘에누마’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이 주최한 비영리 경진대회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아들인 구본웅 포메이션그룹 대표도 투자 업계에서 잔뼈가 굵다. 구 대표는 2011년 벤처캐피털 포메이션8을 설립했고, 2017년 포메이션8을 재편해 포메이션그룹을 만들었다. 주로 해외 기업들에 투자했는데, 특히 포메이션8 1호펀드가 투자했던 가상현실(VR) 스타트업 오큘러스VR이 페이스북에 매각되면서 실리콘밸리에서 크게 이름을 알렸다. 현재 포메이션그룹은 한국의 화장품 스타트업 ‘미미박스’, 금융 스타트업 ‘데일리금융그룹’, 싱가포르 음식 배달 스타트업 ‘어니스트비’, 인도네시아 승차 공유 서비스 ‘고젝’ 등에 투자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례가 서울 기반의 대기업 출신 자제들 이야기였다면, 서울 외의 지역을 기반으로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는 곳도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조선 중견 기업 선보공업의 2세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다. 그는 2016년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선보엔젤파트너스를 창립한 이후 부산·울산·경남 중견기업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핵심 기술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지역 기반 스타트업에 투자해 해외 시장 진출 기회도 제공한다. 이를 위해 부산뿐만 아니라 서울, 광주, 울산, 싱가포르, 베를린 등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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