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촬영된 서울 반포동 반포주공아파트 전경. 서울역사아카이브
1973년 촬영된 서울 반포동 반포주공아파트 전경. 사진 서울역사아카이브

“육순 나이에도 불임수술을 해야 하나요. 경쟁이 심할 것 같은 반포주공은 불임수술자가 다 차지할 것 같다고 하는데, 그곳에 들어가려면 할 수 없이 수술을 해야겠군요⋯.

시집갈 손녀딸까지 있습니다. 이런 나이에도 수술해야 됩니까.”

1977년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주택관리과. 60대 이상 노인들의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그해 7월 26일 자 조선일보에 기록된 내용이다. 정부가 불임시술(정관수술 혹은 난관수술)을 받은 자에게 분양 우선권을 제공하는 청약제도를 도입하자 나타난 웃지 못할 진풍경이었다.

정부는 그해 4월 청약제도를 역사상 최초로 도입했다. 1순위는 해외 취업자로 불임시술을 받은 자, 2순위는 불임시술자, 3순위는 해외 취업자였다. 외화벌이와 산아 제한이 정책 목표인 시대였다. 그러자 반포주공에 청약하려는 고령의 노인들이 항의하고 나섰다. 손녀딸이 시집갈 나이로 출산 계획이 전무한데, 청약을 위해 육순에 불임수술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실제 청약을 위해 불임시술을 받는 사람이 급증해, 1976년 말 8만여 명에 불과하던 영구 불임시술자가 1977년 8월 말 14만여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지금은 부촌(富村)으로 손꼽히는 반포주공아파트가 한때 ‘고자촌’ 또는 ‘내시촌’이라고 불린 배경이다.


2020년 촬영된 서울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전경. 사진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2020년 촬영된 서울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전경. 사진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채소 재배하던 농지를 택지로…복층형 평형의 이색 도입

반포주공은 대한주택공사가 건설한 최초의 대단지 주공아파트다. 반포주공1단지는 99개 동 3786가구, 반포주공2단지는 46개 동 1720가구, 반포주공3단지는 62개 동 2400가구다. 1~3단지는 총 207동 7906가구에 달한다. 당시 국내 아파트 역사상 가장 대규모 단지로 지어졌다. 1973~78년 입주했다.

반포동을 포함한 강남 전역은 1960년 이전까지 서울 시민의 채소 공급지였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가 경기도에서 서울로 편입된 해가 1963년이다. 허허벌판이던 강남은 편입 이후에도 서울로 인식되지 못하고 한강 이남이라는 ‘남(南)서울’,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영동(永東)’으로 불렸다. 이 농촌지대를 택지로 개발한다는 ‘남서울 개발 계획’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했다. ‘영동만은 개발이 조금 늦더라도 이상적인 도시로 만들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전시(戰時)를 대비해 강남에 주거지를 둘 필요도 커지고 있었다.

이로써 강남은 영동1지구(1968년 착수, 반포·서초·잠원·양재동 등), 영동2지구(1971년 착수, 압구정·논현·역삼동 등)로 나뉘어 개발된다. 영동지구의 땅을 대한주택공사가 매입해 처음으로 지은 단지가 바로 반포주공이다. 여의도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성된 신도시였다.

아파트 특성에서 반포주공은 일부 평형을 복층형으로 구성하는 색다른 시도를 한 점이 눈에 띈다. 32평형을 상하로 트고 한 가구가 2층짜리 단독주택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야외 테니스장과 수영장을 설치했다.


8월 29일 찾은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올해 6월 부터 이주를 시작해 창문에 공가 스티커가 붙은 가구가 많았다(왼쪽). 한 현관 문 앞에는 공가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고성민 조선비즈 기자
8월 29일 찾은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올해 6월 부터 이주를 시작해 창문에 공가 스티커가 붙은 가구가 많았다(왼쪽). 한 현관 문 앞에는 공가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고성민 조선비즈 기자

고자촌으로 불린 사연…그때도 말 많았던 청약 우선권

반포주공은 불임시술자에게 우선 청약권을 주는 제도가 도입된 곳이라, 당황한 시민의 모습이 기록으로도 꽤 남아 있다.

1977년 7월 12일 자 조선일보는 반포주공 청약을 두 달여 앞두고 “올가을 짓게 될 주택공사의 반포아파트촌은 불임수술자의 집결지가 되겠다고 해 관변의 화제”라면서 “건설부 직원들은 아파트 입주 후 변칙적인 방법으로 분양받아간 사람들을 상당 기간 추적할 방침인데, 불임수술자들만 입주할 경우 그 마을에서 임신했다거나 아이를 낳게 된 사람은 쉽게 불법 입주자임이 드러나게 될 것이므로 그 색출 작업이 쉬워지겠다고 너털웃음”이라고 적었다.

1977년 9월 15일 자 조선일보는 ‘아파트 분양에 불임 인파 반포 현장’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우선 순위자가 아닌 김상화(35·회사원)씨는 아침 일찍 신청장에 나왔다가 불임시술자가 예상외로 많자 다시 돌아가 부인을 모 국립병원에서 불임시술을 받도록 한 다음 그 수술증명을 받아와 신청했다. 임모(71·남) 노인은 할머니가 ‘피 한 방울이 아까운 처지에 무슨 수술이냐’고 말려 수술을 받지 못했다며 늙은 사람은 아파트에 살기 힘들게 됐다고 고개를 떨구고 돌아갔다.”

불임시술자에게 청약 우선권을 주는 이 제도는 이후 20년 더 이어졌다. ‘44세가 넘기 전 남녀 중 한 사람이 불임수술을 해야만’ 우선권을 받도록 1984년 관련법이 개정됐고, 1986년에는 34세로 다시 개정됐다. 1997년이 돼서야 관련 조항이 삭제됐다. 다자녀가구에 청약 우선권을 주는 요즘과 비교하면 시대상이 상당히 달랐던 셈이다.


강남 불패의 서막, 단지별 재건축 추진 중

반포주공은 가구 규모가 크다 보니 여러 차례 나눠 분양을 진행했다. 반포주공1단지는 1971년 ‘남서울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분양에 나섰다. 분양가는 32평형 기준으로 500만~594만원이었다.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인 이촌 한강맨션은 1969년 27평형을 340만원에 분양했으니, 반포주공 역시 중산층에게 공급된 최고급 아파트 분양가였다.

1971년 최초 분양에서 반포주공1단지는 미분양이었지만, ‘2년 거치 5년 분할 상환’으로 초기 자금을 낮추고 준공을 몇 달 앞둔 1973년 완판했다. 1973년 7월 청약 때는 입주 신청자가 몰려 경쟁률이 5.6 대 1에 달했다. 청약 경쟁의 시작이자 강남 불패의 서막이었다. 이 해 32평형의 프리미엄(웃돈)이 180만~200만원에 달했고, 국내 최초로 컴퓨터를 이용한 부정 청약이 신고됐다. 서석준 전 부총리, 박영수 전 서울시장, 오원철 전 경제수석, 연예인 류시원·싸이·이미연·오영실씨 등이 반포주공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반포주공은 준공 40여 년이 지나며 차례로 재건축을 추진했다. 반포주공2단지는 래미안퍼스티지로, 반포주공3단지는 반포자이로 2009년 각각 준공됐다. 반포주공1단지는 1·2·4주구와 3주구로 나뉘어 각각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1·2·4주구는 현대건설이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로 재건축하며, 3주구는 삼성물산이 재건축 시공을 맡고 있다. 두 단지가 신축되면 반포주공은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된다.

반포주공1단지에서 8월 29일 만난 주민 강정식(77·조합원)씨는 43세이던 1987년부터 30년 이상 반포주공에 거주해 왔다고 말했다. 강씨는 “학군이 좋다 보니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이 되면 ‘8학군’을 찾아 강남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 역시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사 온 뒤로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성민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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