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샘의 플래그십스토어인 디자인파크 서울 잠실점. 사진 유한빛 기자
한샘의 플래그십스토어인 디자인파크 서울 잠실점. 사진 유한빛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내외 산업계가 대격변을 맞은 가운데, 국내에서는 인수합병(M&A) 시장에 유통기업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주력 부문도 식품부터 가구, 외식업까지 다양하다. 그룹의 구조조정을 위한 목적부터 창업주의 결정에 따른 매각까지, 여러 가지 사유로 M&A 시장에 나왔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공통점은 인수자에서 찾을 수 있다. 매물로 나온 유통기업들을 사모펀드들이 쓸어 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이커머스(전자상거래)의 급성장이 맞물리면서 유통산업의 판도가 격변하는 틈을 타 몸값을 올리고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짜기에 수월한 소비재 기업을 사들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전통적으로 M&A 시장의 큰손이던 유통 대기업들은 한걸음 물러난 모양새다. 산업 격변기를 맞아 대기업들은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와 사업 포트폴리오를 따져야 하지만, 사모펀드들은 재매각과 투자 수익만 고려하면 돼 공격적인 M&A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M&A 시장에 쏟아지는 식품·소비재 기업 매물

최근 M&A 시장에서는 인수전이 마무리된 국내 3위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코리아(지마켓·옥션)에 이어 여행·공연예매 사업 강자인 인터파크 등 유통·소비재 기업들의 매각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배달 앱 ‘요기요’와 1세대 패밀리레스토랑인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아웃백)도 새 주인을 찾고 있다. 이 가운데 사모펀드들이 M&A 시장에서 존재감을 내보이고 있다.

국내 1위 가구 업체인 한샘은 최근 IMM프라이빗에쿼티(PE·Pri- vate Equity)에 경영권을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 주관사를 선정하지 않고 경쟁입찰 등 절차를 생략한 채 IMM PE와 직접 협상에 나섰다.

한샘 인수자로 등장한 IMM PE는 1999년 설립된 한국 사모펀드인 IMM인베스트먼트의 계열사다. IMM PE는 이전에도 성공적으로 투자를 마무리한 사례들이 있다. 지난 2013년 토종 카페 프랜차이즈인 할리스커피를 보유한 할리스에프앤비를 450억원대에 인수해, 식사 메뉴 다각화와 브랜드 상품 강화 등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할리스에프앤비의 지분 약 94%를 1450억원에 KG그룹에 매각했는데, 유상증자로 투입한 370억원을 감안해도 상당한 차익을 거뒀다.

한샘뿐만 아니다. 올해 롯데GRS는 1세대 패밀리 레스토랑인 TGIF를 어펄마캐피탈(옛 스탠다드차타드PE) 산하의 엠에프지코리아(MFG KOREA)에 매각했다. 국내 3대 유(乳) 업체인 남양유업도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팔렸다. 창업주 2세인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은 본인의 지분을 포함한 의결권 있는 보통주 약 53%와 경영권 일체를 3107억원에 매각했다.

한앤컴퍼니는 이전에도 웅진식품을 인수해 5년 만에 인수가의 두 배 이상 값에 매각한 경험이 있고, 지난해에는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을 사들여 운영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아웃백 매각에는 치킨 프랜차이즈인 bhc가 대신프라이빗에쿼티(대신PE)·유안타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과 맞붙었다. 매각 주체는 최대주주인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스카이레이크)로, 마찬가지로 사모펀드 운용사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매각을 추진하는 배달 앱 2위 요기요의 유력 인수 후보도 사모펀드 연합이다. 예비입찰에 참여했던 신세계그룹이 발을 빼면서 MBK파트너스,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니티)·퍼미라·베인캐피털 등이 인수적격 후보로 남았다. DH는 어피니티·퍼미라·GS리테일컨소시엄과 단독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할리스커피 서울 이태원점. 사진 할리스커피
할리스커피 서울 이태원점. 사진 할리스커피

투자 차익 노리는 사모펀드, 경영 성과 빠른 소비재 기업 관심

유통업계에서는 대기업과 사모펀드의 사업 구조상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기업의 재무 구조나 주가 관리, 자금 조달 등의 부담이 덜한 사모펀드는 브랜드 인지도를 갖춘 매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만, 대기업의 경우 대형 M&A 건에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초 신세계와 SK, 롯데의 치열한 삼파전을 예상했던 이베이코리아 인수전도 사실상 신세계그룹의 단독입찰로 끝났다.

사모펀드들이 식음료(F&B)나 화장품 등 소비재 기업을 주로 사들이는 이유로는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 장벽과 브랜드 관리·마케팅으로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기 용이한 점이 꼽힌다. 통상 사모펀드는 인수한 지 3~7년 안에 매출, 영업이익 등 실적을 개선해 매각한다. 기술력이 중요한 정보기술(IT) 기업이나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중공업 등은 사모펀드의 투자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편이다.

반면 유통 업체들은 매장 구조조정이나 메뉴 재편으로 비용을 절감하기 쉽고, 신메뉴를 출시하거나 광고 모델을 기용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면 매출로 이어지는 구조다. 프랜차이즈 외식 업체의 경우에는 가맹점 수를 늘려 몸집을 키우기도 쉽다.


사모펀드가 한계 기업 부활시킨 선례도

사모펀드만의 강점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업 포트폴리오나 재무 구조 악화 가능성, 주주들의 반발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대기업들보다 목적성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사모펀드는 회사 자체가 아닌 재매각을 통한 차익 실현에 목표를 두고 있다.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가치를 띄우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9년 12월 치킨·버거 프랜차이즈 맘스터치 운영사인 해마로푸드서비스도 사모펀드 케이앤엘파트어스에 매각됐다. 주인이 바뀐 맘스터치 메뉴판에서는 수익성이 적은 메뉴는 단종되고, 대표제품인 ‘싸이버거’ 등의 가격이 인상됐다. 신메뉴의 가격대도 1만원대에 육박한다. 이 덕분에 지난해 맘스터치의 매출은 크게 변하지 않은 가운데서도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

현재 글로벌 사모펀드인 어피니티가 보유한 버거킹도 마찬가지다. 두산그룹은 지난 2012년 국내 사모펀드 VIG파트너스에 버거킹을 1100억원에 매각했고, VIG파트너스는 버거킹 운영사인 비케이알을 2016년 어피니티에 2100억원에 매각했다. 어피니티는 가성비 메뉴 등을 출시하고 매장 효율화를 진행해 버거 프랜차이즈 1위인 맥도날드와 격차를 줄였다.

국내 1세대 사모펀드인 스카이레이크는 지난 2016년 아웃백 지분 100%를 570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런치 세트 메뉴를 재구성하고 고급 스테이크 메뉴를 출시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2019년에는 배달서비스도 도입했다. 이 같은 변화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배달 매출이 늘어나면서 실적 개선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매출은 약 2979억원, 영업이익은 235억원으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직전 해와 비교해 모두 두 자릿수로 늘었다. 그 덕분에 아웃백의 예상 매각가는 2000억원대로 뛰었다.

남양유업을 인수한 한앤컴퍼니도 성공적인 매각 사례를 자랑한다. 2013년 1000여억원에 웅진식품을 인수해 200억원대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5년 만인 지난 2018년 대만 유통기업에 매각했다. 웅진식품 지분 약 75%의 매각가는 2600억원에 달했다. 한앤컴퍼니는 남양유업과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부, 호텔 브랜드 ‘라한호텔’과 시너지 효과를 낼 방법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은 “이커머스가 발달하면서 유통기업들도 시장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기 위한 자본력이나 제휴 능력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전문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투자 개념으로 접근하는 사모펀드들이 장기적인 안목은 부족할 수 있지만, 경영 효율화나 전문화 면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한빛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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