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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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재계와 노동계가 주목할 만한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나이’만으로 직원의 월급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합리적인 임금피크제’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도 최초로 제시했고, 이 기준에 따라 개별 사업장의 임금피크제 운용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면서 법조계 안팎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이 판단이 나오기까지 대법원에서만 5년여 시간이 걸렸다. 사건이 워낙 복잡했다. 대법원 재판연구원들의 검토 과정도 오래 걸렸고, 대법관들의 합의도 수차례 진행됐다. 대법관 4명으로만 심리가 이뤄지는 소부 선고였지만, 심리 과정에서 모든 대법관의 의견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대법원이 오랜 시간 공들여 사건을 검토했다는 의미다.

‘사업주는 모집·채용, 임금·임금 외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 배치·전보·승진, 퇴직·해고 등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1항)

긴 심리 끝에 나온 판단의 핵심은 ‘연령에 따른 임금 차별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고령자고용법이 강행규정(법률 적용을 배제하지 못하는 규정)인데, 이 사건은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위법하다는 취지다. 

이 법이 전면에 등장해 판례로 확립된 것은 이번이 최초였다. 원고를 대리한 법무법인 산경이 1심부터 ‘고령자고용법은 강행규정’이라는 주장을 펼친 결과였다.


“30년 근무했는데, 순식간에 5년 차”

이 소송은 지난 2014년 처음 시작됐다. 피고 전자부품연구원(현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은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 운영요령’을 만들어 2009년 1월 1일부터 시행했다. 만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에게만 적용되는 내용으로, 이전 직급·역량 등급과 무관하게 별도의 기준을 적용해 월급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였다. 노동조합과 합의하에 이뤄졌다.

사건의 당사자이자 연구원 행정직이었던 A씨는 지난 2013년부터 임금피크제 대상이 됐다. 30여 년간 근무해왔는데, 나이 때문에 순식간에 5~10년 차 직원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A씨는 만 55세에 도달한 2013년 5월부터 명예퇴직을 한 2014년 9월 말까지 임금피크제 운영요령에 따라 급여를 받았다.

이처럼 등급은 사실상 강등됐다. 하지만 업무는 차이가 없었다. 행정직 특성상 경륜이 쌓이면 업무에서 노하우가 생긴다. 그 노하우를 발휘했지만, 월급이 상당 부분 준 것이다. 최고 등급이면 월급 93만원을 덜 받았고, 최저 등급이면 283만원이 깎이는 구조였다. 이에 A씨 측은 “감소 폭이 너무 커서 비합리적이고, 상응하는 보상 조치도 없었다”며 소송을 냈다.


“노사 합의? 글쎄…강행규정임에도 어겨”

A씨 대리인 산경은 우선 임금피크제 시행 전 이뤄진 노사합의에 주목했다. 연구원에는 노조로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전자부품연구원 지부가 있었다. 하지만 전체 직원의 과반수가 되지는 못했다. 계약직 직원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원과 노조 간 합의가 이뤄질 당시 사측과 노조위원장 사이에서 ‘임금피크제 시행’ 여부에 대해서만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산경은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어느 정도의 임금인지, 대상자는 누구인지, 감소 폭은 어느 정도인지, 보상 조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합의 과정에서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단순 임금피크제를 실시한다는 내용에만 서명이 있었던 것이다. 소송을 이끈 김선종(사법연수원 11기) 산경 대표변호사는 “과연 이것을 진정한 합의로 볼 수 있나”라고 말했다.

이후 고령자고용법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법 제4조의4 2항에는 1항을 적용할 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 외의 기준을 적용해 특정 연령 집단에 특히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연령 차별’로 본다고 규정돼 있다. 연구원 임금피크제가 연령 차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이다.

고령자고용법이 강행규정이란 논리도 펼쳤다.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차별한 사업주에게 시정명령을 할 수 있고 시정명령 위반 시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한다. 또 모집·채용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차별한 사업주에게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통상적으로 형사처벌과 과태료 부과의 근거가 있는 경우 강행규정으로 해석된다. 산경은 이 부분을 1심 준비서면부터 언급하면서 ‘고령자고용법에 어긋난다’는 주장의 당위성을 확보했다.

또 산경은 임금피크제 도입 취지를 강조했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는 시점부터 임금을 점차 깎는 대신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로, 경영 효율성과 청년 고용 보장 등이 목적이다. 사건을 함께 담당한 강승범(변호사시험 1기) 변호사는 “A씨의 경우 55세가 넘으면서 원숙한 업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임금피크제 도입 취지에 전혀 맞지 않고, 임금피크제로 확보한 재원을 청년 고용에 쓰지 않았다는 점도 파고들었다”고 설명했다.


1·2심도 일부 승소…대법원 기준 이끌어

1심은 산경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동부지법 민사14부(당시 부장판사 문유석)는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는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은 ‘합리성 없는 자의적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상 평등권의 내용을 구체화한 강행규정”이라며 “이에 따라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 등에 관해 차별하는 것은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연구원 임금피크제가 본 취지에 어긋난다고도 했다. 1심 재판부는 “별도 조치 없이 최대 성과를 올리더라도 적은 액수의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는 것은 임금을 감액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정 근로자 집단만 불이익을 받았고, 집단적 동의가 있었다고 해서 정당화한다면 이 동의를 막을 수 없는 소수 근로자 집단에게만 불이익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놨다. 연구원 측이 “고령인 연구직들은 인공서열제에 따라 높은 급여를 받음에도 실적이 좋지 않다”며 “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런 필요성만으로는 합리적 이유가 충족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1억83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런 판단은 대법원에서도 이어졌다. 대법원은 고령자고용법이 ‘강행규정’이니 지켜야 한다는 점을 판례로 확립하면서도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이 타당해야 하고 △불이익이 너무 심하지 않아야 하며 △불이익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근로 시간 감소 등)를 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중 ‘임금을 깎아 생긴 돈을 본래 목적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기준은 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이 사건의 하급심 과정에서만 언급됐지, 대법원 판례로 확립된 건 최초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엔 기존 도입된 임금피크제를 손보는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해진 상황이다.

김지환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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