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작년 1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 취업률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은 내려갑니다. 페미니즘이 저출산의 원인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억제하는 것이 저출산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누가 봐도 호응을 얻기 힘든 황당한 주장이었다. 실제 한 달 동안 이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단 두 명에 지나지 않았다. 철저히 외면당한 것이다. 다만 인과관계가 애매하지만 여성 취업률과 출산율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여성 고용률은 완만하지만 꾸준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 비율을 가리키는 고용률에서 여성 고용률은 2003년 47.4%에서 작년 50.9%로 높아졌다. 남녀 고용률 격차는 같은 기간 24.7%포인트에서 19.9%포인트로 사상 처음으로 20%포인트 밑으로 떨어졌다. 반면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는 2000년 1.48명에서 작년 0.98명으로 줄었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도 1980년대 초반까지는 상황이 비슷했다. 여성 취업 증가가 출산율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추세가 반전됐다. 여성 취업률이 계속 높아지는 가운데 그동안 꾸준히 감소했던 출산율이 오히려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이런 변화의 선두에 서 있다. 강력한 사회안전망과 함께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과 국민 의식 등이 여성 취업률과 출산율의 동반 상승을 이끌어냈다. “모든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고 할 정도로 공공 보육서비스 수준이 높고, 남성들도 육아와 가사 부담을 비교적 고르게 나눠 지고 있어 취업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수월한 분위기다.

주목할 부분은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들이 북유럽 국가들을 바짝 뒤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어권 국가들은 스웨덴 등에 비해 자녀가 있는 취업 여성에 대한 지원이 빈약하고, 가구의 육아 비용 부담도 큰 편이다. 평균 소득 수준의 가정에서 양육비 지출 비중은 영국이 36%, 미국이 32%에 이르는 데 비해 스웨덴은 4%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영어권 국가들의 여성 취업률과 출산율이 북유럽 국가들에 근접하고 있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호주 시드니대 연구진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종의 미스터리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영어권 경제의 서비스 산업 비중이 더 크다는 사실이 여성 취업 및 출산율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여성 친화적이다. 미국의 경우 여성 취업자의 91%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반면 남성은 68.5%로 큰 차이가 있다. 독일의 공공보육 서비스 수준이 영어권 국가들보다 높은데도 여성 취업률과 출산율이 낮은 것은 독일이 아직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데 따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문화적 요인도 중요하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역시 육아 비용 부담이 적은 편이지만 가부장제 문화가 여성 취업률과 출산율 증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육아·보육 지원 확대와 함께 경제·산업 구조 변화와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이 저출산 해결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한국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연구진이 인용한 OECD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 평균 소득 가구의 양육비 지출 부담은 가구 소득의 2%에 지나지 않는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육아 비용 부담이 가장 적은 편에 속한다. 누가 봐도 이해하기 힘든 통계다. 한국이 제공한 원자료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책 입안에 필요한 기초통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다.

김기천 조선비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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