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
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

일본의 경제보복이 점입가경이다.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7월 4일 0시를 기해 해당 품목들의 통관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음을 산업통상자원부가 확인했다. 나아가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전략물자로 규정된 1000여 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의미하며, 반도체뿐 아니라 전자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의 이 같은 공격이 우리 기업들에 어느 정도의 피해를 줄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대다수 전문가가 우리 기업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불화수소 등의 소재를 중국 등 다른 국가 기업에서 대체할 수 있어 피해가 적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국내 기업들이 중국 빈화그룹(산둥성에 위치한 화학회사)에서 불화수소를 납품받기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공급망관리(supply chain management)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망(supply chain)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공급자로부터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사이의 모든 중간 단계를 말한다. 인력과 정보, 원자재, 자금 등이 공급망을 통해 정확하게 전달돼야 최종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완전한 상태로 이용할 수 있다.

즉, 특정 화학소재 몇 종의 수입 가능 여부만을 바라볼 때 국내 기업의 피해가 적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일본 기업들이 우리 기업 공급망의 전 단계에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향후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많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제품과 서비스의 공급망 전 단계를 두루 살펴보고 일본이 향후 우리 정부에 취할 수 있는 공격이 이런 공급망의 어떤 단계에서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공급망관리 차원에서 일본에 대응해야 하는 것은 우리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반도체 등 IT산업의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

반도체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일수록, 그리고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높을수록 공급망은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고부가가치 제품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수입하는 수많은 소재를 필요로 하고 이를 모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은 특정 국가에 머무르지 않고 전 지구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복잡한 공급망관리를 요구하는 현재의 시장상황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극도로 효율적인 공급망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초격차를 유지할 수 없다. 일본은 물샐틈없이 촘촘해야 할 우리 기업들의 공급망관리 제일 밑단인 소재수출 부문을 차단했다. 더욱이 우리 기업들이 차세대 먹을거리로 기대를 걸고 있는 비메모리반도체가 다품종 소량생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까지 파악해 비메모리반도체에 필수적인 소재만을 골라 수출규제를 하는 치밀함도 보이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소품종 대량생산방식이기 때문에 소재 수출이 일정 기간 중단돼도 기존의 재고를 활용해 글로벌 공급망에 즉각적인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품종 소량생산방식의 비메모리반도체의 공급망은 소재 수출이 중단되는 즉시 타격을 받아 전 세계의 공급망에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일본이 이번 수출규제를 통해 얻고자 하는 점은 명확하다. 우리 기업들의 미래 먹을거리인 비메모리반도체가 주문받은 후에야 생산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이기 때문에 많은 재고를 쌓아둘 수 없다는 점을 노려 비메모리반도체의 공급망을 흔들어 이 분야의 경쟁력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비메모리반도체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우리가 후발주자이기에 압도적인 기술력이나 물량으로 승부하기도 어렵다. 이제 우리 기업들은 확실한 소재 공급처로 생각했던 일본이 언제든 공급망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을 절실히 느낀 만큼 비메모리 분야의 공급망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총수들을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총수들을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공급망 회복에 주력해야

치명적인 선제공격을 받은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이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고 일본의 강경한 태도를 볼 때 이 전쟁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섣부르게 감정적인 대응을 하거나 피해가 적을 것으로 오판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일본은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일본이 공격한 국내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관리를 어떻게 빠른 시일 내에 회복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우선 국내 기업들은 일본이 독점하고 있는 소재 공급망의 다변화를 위한 작업에 나서야 한다. 현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와 SKC(SK그룹 계열사로 화학소재를 생산)는 협업을 통해 차세대 폴더블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투명 폴리이미드(PI)를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렇게 국내외 기업들과의 다각적인 협업을 통해 공급망관리의 가장 기본 토대가 되는 소재가 특정 국가에 속한 특정 기업 몇 개의 손에 쥐락펴락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또 공급망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촘촘한 배송망을 구축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아무리 전 세계 다양한 공급처에서 소재나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해도 이를 기업이 필요한 시기에 바로바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정확한 배송망과 운송방법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재고관리도 수반돼야 한다.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서 세계 전역에 퍼져 있는 글로벌 소재기업들과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고 재고를 관리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SCM 1일 결정체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촘촘한 SCM역량을 더욱 강화해 반도체 사업 부문에도 적용해야 한다. SCM 1일 결정체제는 세계 각국 통신사와 유통업체들이 스마트폰 수요를 늘리거나 줄이면 바로 다음 날 생산에 반영할 수 있는 SCM시스템을 말한다.

한편 정부는 국가의 보조금 지급 등 특단의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이 일본에서 소재의 대부분을 공급받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 소재기업들의 자생적 발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막대한 시간과 자금이 소요되는 일이다. 일반적인 자유무역 상황에서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WTO협정 위반 소지가 있지만 이렇게 일본이 일방적으로 수출규제로 국내 첨단산업을 고사시키려 하는 위기의 시대에는 우리 정부도 보조금을 지급할 명분이 생긴다. 일본의 위협이 보조금을 통해 국내 소재기업들의 기초체력을 키워줄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고 우리의 역량강화에 집중하자.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이 싸움의 최후 승자가 되기 위해선 우리 기업들이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소재와 부품의 공급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이런 공급망이 갑자기 차단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공급망은 기업과 산업의 혈류이기 때문이다. 피가 돌지 않으면 사람이 생존할 수 없듯이 공급망이 차단되면 글로벌 일류 기업도 순식간에 쓰러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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