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와세다대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조선비즈·동아일보 기자, 일본 도쿄 IT기업 근무, ‘오타쿠 진화론’ 저자
이진석
와세다대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조선비즈·동아일보 기자, 일본 도쿄 IT기업 근무, ‘오타쿠 진화론’ 저자

일본 직장인에게도 ‘세(稅)테크’는 절실하다. 소득 확정신고를 하는 매년 2월이 다가오면 주변에서는 직장인들이 서로의 절세 테크닉을 화제에 올린다. 지난 수년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절세 수단은 단연 ‘후루사토(고향) 납세’다.

고향 납세란 일본의 기부금 제도 중 하나다. ‘세금’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기부금을 납부해 세금을 공제받을 수 있는 세제 혜택이다. 일반 기부금과 다른 점은 납세자가 희망하는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에 일정액을 기부하고 주민세를 경감받는다는 점이다. 고향 납세는 지방자치단체의 세수 감소로 인한 지역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취지로 2008년 도입됐다. 일본 경제의 중심인 도쿄나 오사카, 나고야 같은 대도시가 아닌 지자체는 걷히는 세금이 적은 탓에 복지 확충이나 시설 투자가 여의치 않았다. 도시로 거처를 옮긴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기업인 중에서는 ‘고향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본적을 옮기지 않고 출신 지역에 세금을 납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향 납세액은 도입 첫해 72억엔(약 747억원) 수준이었던 것이 2011년 649억엔(약 6740억원)으로 늘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재해를 입은 도호쿠 3현(후쿠시마현·이와테현·미야기현)에 기부가 쏟아진 덕분이다. 전체 고향 납세액 중 약 400억엔(약 4154억원)이 이 3개 현에 기부됐다. 이듬해엔 일본의 대표적 휴양지인 가루이자와에 사는 익명의 남성 고소득자가 이 제도를 이용해 3개 현에 7억엔(약 72억원)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내림세를 보이던 고향 납세는 각 지자체들이 답례품으로 기부자들에게 지역 특산물을 보내기 시작한 2015년 1471억엔(약 1조5278억원)으로 폭증했다. 이후 일본 전국의 지자체가 세수 확보의 주요 수단으로 앞다퉈 고향 납세 유치에 나섰다. 다양한 답례품이 납세자의 인기를 끌기 시작해 고향 납세액은 2016년 2540억엔(약 2조6380억원), 2017년 3653억엔(약 3조7940억원)에 달했다.

세수가 늘어난 지자체가 있으면 줄어드는 곳이 있는 게 당연하다. 도쿄의 대표적인 부촌인 세타가야구는 2017년 구민 5만7000여 명이 다른 지자체에 총 109억엔(약 1132억원)의 고향 납세를 하는 바람에 연간 세수가 41억엔(약 425억원) 줄었다. 확정신고로 환급금이 발생하면 울상이 된다. 구민이 다른 지역에 기부한 데 따른 환급금을 구민이 거주하는 지역의 지자체가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한 지자체가 고향 납세를 통해 497억엔(약 5161억원)의 세수를 올려 화제를 모았다. 인구 10만 명에 불과한 오사카의 이즈미사노는 간사이공항 인근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숙박업과 농업을 제외하면 별다른 세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2009년에는 재정 악화로 인해 정부의 재건 계획인 재정 건전화 단체에 포함됐다. 이즈미사노가 거액의 고향 납세액을 모은 것은 유명한 지역 특산품을 내걸어서도, 재해를 입어 성금이 쏟아진 것도 아니었다. 지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니가타현의 쌀, 홋카이도의 해산물은 물론 캔맥주, 항공사 이용권 등 무려 900여 종의 답례품을 내걸었다. 정부 지침인 ‘답례품은 기부액의 30% 미만으로 할 것’을 훌쩍 넘는 가치가 있는 답례품을 내걸었다.


4월 16일 밤 일본 도쿄의 시민들. 도쿄를 비롯한 일본 대도시 시민들 사이에서 다른 지역의 지자체에 기부금을 주고 세금을 공제받는 ‘고향 납세’가 유행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4월 16일 밤 일본 도쿄의 시민들. 도쿄를 비롯한 일본 대도시 시민들 사이에서 다른 지역의 지자체에 기부금을 주고 세금을 공제받는 ‘고향 납세’가 유행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정부 지침 위반하며 고가 답례품 경쟁

‘룰 위반’은 이즈미사노뿐만이 아니었다. 고향 납세를 둘러싼 지자체들의 경쟁이 과열된 지난해에는 현금성이 강한 상품권이나 선불카드를 답례품으로 내건 지자체도 등장했다. 사가현 미야키정(町·시와 촌 사이의 지역 단위)은 지난해 기부금의 50%를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비자(VISA) 선불카드를 답례품으로 내놓았다.

보다 못한 정부가 규제의 칼을 뽑았다. 일본 총무성(한국의 행정안전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정부 부처)은 지침을 지키지 않은 12개 지자체를 열거하며 ‘권고를 지키지 않을 경우 고향 납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이 물러서지 않자 최근에는 특별교부세 배당액을 줄이기에 이르렀고, 올 6월부터는 권고가 아닌 실제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지침을 위반하는 지자체는 고향 납세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즈미사노는 여기에 맞불을 놨다. 규제가 강화되는 6월 전까지 답례품에 얹어 기부액의 최대 30%를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전자상품권으로 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어차피 다음 심사에 통과하지는 못할 테니 ‘마지막까지 단물을 뽑는다’는 전략이다. 예컨대 10만엔(약 103만원)을 기부하면 2만엔(약 20만원) 상당의 캔맥주나 쇠고기를 받고, 추가로 3만엔(약 31만원)어치 아마존 상품권을 얻게 되는 셈이다. 이즈미사노는 이를 통해 최대 300억엔(약 3114억원)어치의 아마존 상품권을 제공할 계획이다.

여기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고향 납세 대행 사이트도 기부자를 유치하기 위해 5~10% 안팎의 아마존 상품권을 환원해 주는 이벤트를 내걸고 있다. 이에 따라 고향 납세를 통해 아마존이 올리는 매상고는 연간 수백억엔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마존은 정작 일본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법인세를 낸다. 2017년의 경우 1조엔(약 10조381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지만 납세 금액은 11억엔(약 114억원)에 그쳤다. 일본 소규모 지자체들의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만든 납세 제도가 정작 조세 회피에 열중인 외국계 기업의 의도치 않은 이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고향 납세의 진정한 승자는 아마존’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지난 수년간 계속돼 온 고향 납세의 ‘답례품 파티’는 올해를 끝으로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참정권도 안 주는데 세금만 꼬박꼬박 걷어가는 정부가 아니꼬워 1엔이라도 세금을 덜 내고 싶던 필자는 못내 아쉽고 헛헛하다. 그래도 몇 년간은 잘 먹고 잘 썼다. 필자가 기부한 지자체는 생전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고향은 무슨.

이진석 ‘오타쿠 진화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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