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많은 청문회를 거쳐 취임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의욕적인 발언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중소기업의 기술을 중기벤처부가 지켜주겠다는 발언이다. 중소기업이 기술과 기밀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사업을 내걸었다. 중소기업 기술 탈취의 경우 10배에 해당하는 징벌적 손해 배상과 입증책임전환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대기업에 의한 기술 탈취론은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사실인 양 널리 알려진 일이고 반재벌‧반기업 정서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럼 과연 이 ‘대기업의 무분별한 기술 탈취론’은 사실일까?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나라는 법치국가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다른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탈취하는 것이 합법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문명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술 탈취의 최종 판결은 행정부의 감독기관이 관여하고, 결국은 기술을 탈취당했다는 기업과 탈취 혐의가 있는 당사자 간 분쟁이라 결국 그 판결은 사법부에서 가려지게 돼 있다. 우리나라가 기술 탈취가 만연한 사회라면 사법부나 행정부가 모두 편파적으로 중소기업의 재산권 보호에 실패한 부패 국가라는 말이 된다. 중기벤처부가 이를 ‘뿌리 뽑는다’는 것은 사법부를 개혁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니 그야말로 믿지 못할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중기벤처부는 중소기업의 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액 규모가 최근 5년간 5410억원에 이른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이 주장하는 피해액에는 직원들이 기술을 빼돌려 경쟁 회사로 간 경우가 태반이다. 거래 상대인 대기업에 의한 피해액은 일반 국민이 알고 있는 것과 매우 다르지만 기술 탈취라는 언어는 곧바로 대기업의 중소기업 탈취로 인식되고 있다.

2010년 기술 탈취에 대해 징벌적 처벌이 도입된 이래 2017년까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에 대한 공정위 제재 건수는 단 5건인데 그중 시정명령이 4건, 과징금 부과는 1건이었다. 과징금 금액은 고작 1600만원이었다.

문제는 이 징벌적 처벌 조항이 가져온 후과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국민이 인식하는 것보다 매우 활발하게 새로운 기술 회사를 인수‧합병하고 이들 회사에 전략적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실적을 보면 대상이 되는 국내 기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우선 우리나라 중소‧벤처기업에 사실상 사줄 만한 기술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기술 기업들이 훌륭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한국 대기업이 기술 탈취나 노리는 부도덕한 기업이라면, 기술 기업은 한국의 대기업이나 재벌 기업에 기술을 팔 이유가 없다. ‘도덕적인’ 글로벌 대기업에 ‘제값’을 받고 팔면 될 일이다. 전 세계 글로벌 대기업은 기술 기업의 인수에 혈안이 돼 있다. 구글은 지난 5년간 250개 이상의 기업을 인수했고, 중국의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이유가 더욱 심각하다. 기술의 인수와 투자에는 협상이 따른다. 협상하다가 인수 가격이 맞지 않아서 우리나라 대기업이 포기하고 자체 개발하거나 대안을 마련하면, 기술을 팔지 못한 기업이 기술 탈취와 베끼기 혐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반재벌‧반기업 정서를 신경 쓰는 한국의 대기업은 그래서 국내 기업의 기술 인수에 지극히 소극적이다.

그런데 입증 책임을 피의자가 지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피고인에게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으로, 법치의 일반 원칙에 어긋난다. 대기업에 부당하고 과도한 부담이 된다. 대기업은 법률적 비용보다도 이런 혐의가 덮어씌워지면 치러야 할 사회적 비난의 비용을 더 무서워할 것이다. 결국 근거도 희박한 기술 탈취론에 의한 중기벤처부의 기술 보호 정책은 한국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의 기술을 지금보다도 더 외면하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중기벤처부가 고민할 사항은 기술 탈취가 아니다. 현실을 모르는 이념과 포퓰리즘 정책이 집행되면 그나마 있던 기술 협력 생태계도 단절될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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