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대공포 FlaK 36은 개발 목적과 다른 지상포로 더 높은 명성을 날렸다. 사진 위키피디아
독일의 대공포 FlaK 36은 개발 목적과 다른 지상포로 더 높은 명성을 날렸다. 사진 위키피디아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비행기가 무기로 사용되자 이를 요격하기 위한 수단의 등장은 필연이었다. 처음에는 기관총을 이용했지만 총탄이 고고도로 올라가면 파괴력이 줄어들고 수십 발을 맞춰야 비행기를 간신히 격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한두 발이 명중해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대응책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대공포가 역사에 등장했다. 하지만 필요한 조건이 까다로워 개발이 쉽지는 않았다. 우선 고고도까지 포탄이 힘을 잃지 않고 올라가려면 포구의 속도가 빨라야 했고 특정 공간에 신속히 탄막을 형성할 수 있는 연사력도 좋아야 했다. 이런 난제를 해결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전선에서는 당장 내놓으라고 아우성이었다.

이에 이런저런 포들을 동원해서 포탄을 날려댔지만 명중률이 형편없어 ‘공갈포’라는 소리를 들었다. 비행기에 탑승한 조종사들이 일부러 상공을 배회하며 약 올리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사실 화력 관제 시스템이 고도화된 지금도 포로 비행체를 맞추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서, 주로 대공미사일들이 방공을 담당한다.

전쟁 후반부가 되자 지연 신관을 이용해 포탄이 예정된 고도에서 폭발해 무수한 파편으로 탄막을 구성하는 방식의 대공포가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1918년 독일은 연사력이 좋은 기존 8.8㎝ SK L/45 함포를 기반으로 하는 8.8㎝ Kw FlaK 18(이하 Kw FlaK 18) 대공포를 개발했다.

이후 후속 대공포들은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포가와 자동화된 급탄 및 탄피 배출 시스템을 채택했지만 곧바로 종전을 맞이하면서 Kw FlaK 18은 전선에서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항공 전력의 역할이 급격히 커지자 향후 대공포의 중요성도 함께 증대할 것이 명약관화했다.

패전국의 멍에를 짊어진 독일은 중화기의 개발과 보유를 금지당했지만, 이전에 개발된 대공포는 양산이 가능했기에 겉으로는 Kw FlaK 18을 계속 생산하는 것처럼 하면서 비밀리에 성능 개량 사업에 착수했다. 이때 개발자들은 Kw FlaK 18의 포신을 수평까지 내리면 평사포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것뿐이지 지상전용 무기로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렇게 1928년 새로운 대공포가 완성됐는데, 기존의 Kw FlaK 18과 같은 포라고 기만하기 위해 이를 8.8㎝ FlaK 18(이하 FlaK 18)로 명명했다. 이렇게 탄생한 FlaK 18이 대공포보다 뛰어난 대전차포(전차를 파괴하는 데에 쓰는 포)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에 개입한 독일은 ‘콘도르 의용군’이라는 이름의 부대를 파견했다. 많은 무기를 가지고 갈 수 없었던 소부대여서 FlaK 18이 대공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여타 교전 행위에도 골고루 투입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른바 ‘88(FlaK 18과 이후의 개량형인 36·37·41)’의 예기치 못한 신화가 시작됐다.

스페인 내전의 전과를 바탕으로 탄생한 개량형이 8.8㎝ FlaK 36(이하 FlaK 36)이다. FlaK 36은 처음부터 대공 목적 이외에도 지상전을 염두에 두고 별도의 철갑탄을 함께 개발하고 포방패도 부착했다. 이후 FlaK 36은 88을 대표하는 모델이 됐다. 88이 대전차포의 전설을 쓰기 시작한 때는 1940년 독일의 프랑스 침공전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초기의 독일 전차들은 화력이 상당히 부족해서 적 전차 공격의 상당 부분을 기갑부대와 함께 행동하는 대전차포들이 담당했다. 그런데 기존의 3.7㎝ PaK 36 대전차포로 연합군의 마틸다 II 전차나 샤르 B 전차를 격파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러자 당시 제7기갑사단장이던 롬멜이 88을 동원해 이들을 요격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침공전에서만 152대의 연합군 전차와 151곳의 벙커가 88에 의해 격파됐다. 이것은 단지 전설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제2차세계대전 내내 88의 명성은 곳곳에서 자자했다. 특히 독·소 전쟁에서는 엄청난 물량전을 펼치던 소련군 기갑부대를 최전선에서 격파한 일등공신이었다. 덕분에 독일은 수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었다.


개발 목적과 달랐던 ‘뜻밖의 성공’

전쟁사에 애초 목적과 달리 엉뚱하게 효과를 발휘한 무기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그중 처음부터 대공포로 개발됐고, 그런 목적대로 많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정작 이 분야에 대한 평판보다 대전차전이나 지상의 목표물 공격에 탁월한 위력을 발휘하면서 더 큰 명성을 얻은 88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최초 심장 질환 치료제로 개발하던 중 나타난 예상치 못한 부작용 덕분에 탄생한 비아그라. 사진 위키피디아
최초 심장 질환 치료제로 개발하던 중 나타난 예상치 못한 부작용 덕분에 탄생한 비아그라. 사진 위키피디아

의외로 일반 상품 중에서도 그런 사례가 많다. 초강력 접착제의 개발은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그 과정에 탄생한 포스트잇은 3M의 대표적인 히트작이 됐다. 그보다 더 큰 이슈가 된 것은 1998년 화이자가 개발한 비아그라다. 비아그라는 심장 질환 치료제를 목적으로 개발됐으나, 엉뚱하게도 실의에 빠진 많은 남성들의 구세주가 됐다.

모든 제품은 개발을 시작했을 때 분명히 원하는 목표가 있다. 당연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실패한 프로젝트가 되거나 제품이 시장에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위에 거론한 사례처럼 원래 예정했던 목표는 아니지만 의외로 다른 분야에서 대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프로젝트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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