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의 역사를 바꾼 StG44. 현재 사용 중인 모든 자동소총의 원조로 불린다. 사진 위키피디아
총기의 역사를 바꾼 StG44. 현재 사용 중인 모든 자동소총의 원조로 불린다. 사진 위키피디아

군사력 세계에서는 좋은 무기를 가진 쪽이 전투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다. 갈수록 무기 성능이 좋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1차세계대전 당시 하늘의 주인공이던 복엽기는 지금도 비행하는 데 무리가 없지만 더 이상 전투기로 사용하기는 곤란하다. 때문에 무기는 내구연한이 지나지 않았어도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면 용도 폐기되는 사례가 흔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총은 생각보다 발전이 더딘 무기다. 예를 들어 현재 일선에서 사용 중인 M1911 권총이나 M2 중기관총 같은 경우는 개발된 지 무려 100년이나 됐다. 이들이 개발됐을 당시에는 미사일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 무기들은 다양한 유도 무기가 날아다니는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군인의 기본 무기라 할 수 있는 소총도 마찬가지다. 현재 전 세계 모든 군대는 예외 없이 돌격소총이라고도 불리는 자동소총을 기본 화기로 사용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IS) 같은 테러 조직은 물론 마약 카르텔 같은 폭력단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산 K2를 비롯해서 유명한 AK-47, M16 등이 대표적인 자동소총이다.

그런데 현존하는 모든 자동소총은 예외 없이 1942년에 탄생한 독일의 StG44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마디로 StG44에서 자동소총의 모든 것이 완성됐다는 의미다. 뒤에 등장하는 자동소총들은 시간이 흐른 만큼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내구성, 신뢰성 등이 향상됐을 뿐이지 근본 메커니즘이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소총이 오래전에 개발됐지만 여전히 주력 무기인 이유는 소총으로 교전을 벌일 수 있는 상황이나 환경이 StG44 등장 당시와 비교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상과학 영화 속 광선총 같은 전혀 다른 방식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자동소총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StG44 이전에 사용된 각국의 주력 소총들은 18세기 중반에 등장한 볼트액션 소총이었다. 정확도, 위력, 안정성이 좋아 지금도 저격용 총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볼트액션 소총은 한 발씩 노리쇠를 작동시켜 사격하기 때문에 연사력이 뒤떨어진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그럭저럭 사용할 수 있었지만, 제2차세계대전 이후 기동전이 대세가 되자 적합하지 않게 됐다.

제2차세계대전 초기에 독일군은 MG34, MG42 같은 기관총으로 화력을 담당하고 Kar98k 소총을 보조 화기 형태로 운용했다. 독일군의 이같은 전략은 방어전에서는 그럭저럭 효과가 좋았으나 공격에 나서면 문제가 많았다. 기관총은 연사력이 좋은 대신 무거워서 기동력이 떨어졌고 소총은 한 번 발사하면 다음 발사를 위해 잠시 돌격을 멈춰야 했다.

독일군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려고 일부 병력을 MP40 같은 기관단총으로 무장시켰으나, 권총탄을 사용했기 때문에 사거리와 파괴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 보병의 기본 장비와 소모품이 이리저리 나뉘는 것은 정비나 보급 측면에서 좋지 않았다. 결국 소총처럼 위력이 강하지만 기관단총의 연사력을 갖춘 새로운 보병용 화기가 필요했다.

이미 기관총, 기관단총이 존재하므로 연사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사격 시 발생하는 반동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1942년 해넬(Haenel)은 소총탄으로 사용하는 7.92×57㎜ 마우저(Mauser)탄 대신 길이와 장약의 양을 줄인 7.92×33㎜ 쿠르즈(Kurz)탄을 사용하는 소총 개발에 착수했다.


StG44로 무장한 전쟁 말기의 독일군. 일선병사, 즉 최종 소비자의 요구가 히틀러의 고집을 꺾었기에 전선에 등장할 수 있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StG44로 무장한 전쟁 말기의 독일군. 일선병사, 즉 최종 소비자의 요구가 히틀러의 고집을 꺾었기에 전선에 등장할 수 있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히틀러, 독일군 소총 개발도 간섭

유효 사거리가 절반으로 줄었지만 대부분의 교전이 300m 이내에서 벌어져 크게 문제되지 않았고 위력은 그대로였다. 개발 부호 Mkb42(H)로 명명된 8000정의 시제품이 테스트를 위해 그해 11월 전선에 공급됐다. 이를 사용해본 병사들은 무기 성능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Kar98k보다 4~5배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시대를 선도할 새로운 소총이 나왔지만 히틀러는 총탄 보급에 문제가 많다며 Mkb42(H)의 개발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쉬움이 많았던 개발진이 비밀리에 연구를 계속 진행하다 들켜서 히틀러가 격노하기도 했다. 독일이 패전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처럼 국가원수가 소총 개발까지 관여했을 만큼 군대가 경직됐던 점이다.

사장될 뻔한 프로젝트가 극적으로 부활할 수 있게 된 것은 최종 소비자의 적극적인 요구 덕분이었다. Mkb42(H)를 원하는 병사들의 요구가 계속해서 빗발치자 1943년 3월, 무소불위의 히틀러도 결국 개발 재개를 승인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고 완성된 끝에 StG44라는 정식 명칭을 부여받고 1944년부터 본격적으로 전선에 공급됐다.

하지만 이때는 독일이 이길 가능성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StG44는 병사들로부터 호평받았고 적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지만 등장이 늦었다. 게다가 생산량도 부족해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다만 처음 언급한 것처럼 AK-47, M16 등 전후 등장한 자동소총의 탄생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는 말이 있다. 소비자는 항상 합리적인 구매를 원하고 그런 니즈를 충족시켜 이익을 얻기 위해 공급자는 즉각 행동한다. 이 과정에서 제3자의 개입이 지나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StG44의 사례에서 보듯이 경제와 그다지 상관없을 것 같은 무기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성공한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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