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직업으로 도전할 수 있는 연령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새로운 직업으로 도전할 수 있는 연령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화번호부 제작 회사에서 40년간 일하며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던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는 은퇴 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외국어 공부, 요리교실, 요가 등 여러가지 취미활동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에 시달리던 그는 사회에서 노동을 통해 이를 해소하고자 했다. “뮤지션한테 은퇴란 없다.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다. 내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때마침 우연히 보게 된 온라인 쇼핑몰 스타트업 ‘어바웃 더 핏(About The Fit)’의 시니어 인턴 자리는 그에게 좋은 기회였다.

업무 첫날엔 노트북 켜는 법조차 몰라 주변의 나이 어린 동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벤은 온라인 기반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술을 빠른 속도로 배우고 시스템에 적응했다. 그의 무기는 40년간의 직장 생활 경험과 70세의 나이에서 나오는 관록이었다. 주변 어린 동료들은 벤을 아버지처럼 따르며 업무 관련 고민은 물론, 연애 고민, 경제적 문제까지 모든 것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나이가 너무 많아 부담스럽다며 그를 피했던 30세의 최고경영자(CEO)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도 점차 벤에게 마음을 열고 그에게 의지하기 시작한다.

2015년 개봉한 미국 영화 ‘인턴’은 박진감 넘치는 SF 히어로물, 눈물을 쏙 빼놓는 로맨스물 그 어느 것도 아니지만 국내에서만 360만명의 관람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관람객들은 잔잔한 감동이 몰려오는 영화라고 평가하면서도 ‘현실 속 벤은 없다’ ‘이 영화는 판타지에 가깝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관련 직무 경험이 없는 고령의 근로자를 채용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노동 사회는 노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지은정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고령자의 생산성이 낮다는 부정적 인식에 따른 ‘연령차별’이 고령자의 노동시장 활동을 저해한다”며 “60세가 넘어도 생산성이 급락한다고 볼 수 없는데, ‘나이 듦’과 ‘쓸모없음’을 동일시하고 생산성이 낮다고 간주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사회의 편견을 잘 알고있는 고령 노동자들은 양질의 일자리로 ‘전직(轉職)’하는 것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직업 전환이 어린 연령층에서만 활발하게 이뤄지고, 노인 일자리가 질 낮은 단순 노무직 위주로만 창출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인적자원관리전문 글로벌컨설팅기업인 ‘넥스탤런트(NexTalent)’의 창립자이자 ‘당신의 커리어를 방해하는 것들’의 저자인 앙투안느 티라르(Antoine Tirard), 그리고 공동 저자인 클레어 하버 라이엘(Claire Harbour-Lyell)은 “직업 전환 시기는 연령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사회의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티라르와 하버 라이엘은 “기존 연구는 고령 근로자들이 ‘덜 의욕적이고, 적응력이 떨어지며, 건강하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광범위한 고정관념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러한 연구 결과가 고령 근로자의 전직 기회를 가로막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인사 담당 임원들은 “고령 근로자가 젊은 근로자보다 인건비가 비싼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병가를 사용할 것”이라며 이들 채용을 꺼린다.

실제로 미국은퇴자협회(AARP)가 45~74세 사이 근로자 15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4%는 직장 내 연령차별을 목격했거나 직접 경험했다고 밝혔다. 또 60~74세 그룹 중 ‘나이 때문에 직장에 채용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25%로, 45~59세 그룹(17%)에 비해 더 많았다.


나이 많아 일 못한다는 것은 ‘편견’

그러나 티라르와 하버 라이엘은 “기존 연구를 메타분석(기존 연구물의 결과를 종합해 연구 결과의 한계를 보완하고 거시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연구방법)해보면 연령에 따라 업무 수행능력은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먼저 ‘민첩성’이 그렇다. 최근 고객 욕구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기업 환경의 경쟁도가 올라가면서, 조직의 생존과 성공을 위한 역동적인 능력으로 ‘조직민첩성’ 개념이 떠오르고 있다. 이 조직민첩성은 근로자들의 민첩성이 수반돼야 가능하다. 매니지먼트 컨설팅 기업 ‘콘 페리’의 연구에 따르면, 민첩성을 학습하는 능력은 연령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 ‘인턴’에서 70세의 벤 휘태커(가운데)는 온라인 쇼핑몰 스타트업의 ‘시니어 인턴’에 도전해 성공적으로 적응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인턴’에서 70세의 벤 휘태커(가운데)는 온라인 쇼핑몰 스타트업의 ‘시니어 인턴’에 도전해 성공적으로 적응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인지능력 역시 연령과는 상관관계가 적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악셀 보슈 슈판(Axel Borsch-Supan) 박사 등의 연구에 따르면, 50~54세의 인지능력(100)을 기준으로 60~64세는 95, 70~74세는 80으로 나타나 65세 이후에도 크게 감소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졌다. 평균 근력 역시 20~60세 사이 10% 감소하며, 60~80세 사이 15%, 80세 이후 3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핀란드의 ‘근로 생활의 질(Quality of Working Life Survey)’ 조사에서도 61세 이상의 생산성은 8.1점으로 20대(9점)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었다.

국내 연구 결과를 봐도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은정 부연구위원의 ‘60세 이상 고령근로자의 생산성에 대한 인식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생산성이 정점에 오르는 연령대는 40대다.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은 일반적으로 이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실제 연구 결과 60대 근로자의 생산성은 40대 근로자의 72.4%이고, 60세 이상으로 보더라도 40대 근로자의 70.3%로 나타났다. 사회적 통념보다는 감소폭이 크진 않지만, 해외 선행연구보다는 크다. 이에 대해 지은정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단기간에 산업화되면서 경제적 가치를 강조하고, 젊음과 생산성을 일치시키며 고령자에 대한 부정적 연령차별이 급격하게 확산됐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아직 수치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티라르와 하버 라이엘은 고령 근로자들의 ‘풍부한 경험’이 새로운 직업에 도전했을 때 연착륙할 수 있는 ‘안전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고령 근로자는 유연성, 자신감, 냉철함, 객관성 등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전직에 대한) 고령 근로자 자신의 태도”라며 “자신이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이전과 달리 고령 근로자가 조금 더 자신있게 전직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최근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고령화’ 현상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머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 65세 이상 인구는 현재의 3배, 80세 이상 인구는 4배에 이를 전망이다. 티라르와 하버 라이엘은 “(이 같은 고령화는) 출생률 감소 현상과 결합되면서 심각한 숙련된 인력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기업들은 이 같은 변화를 이해하고 살아남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 근로자일수록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기피하는 기업이 많지만, 실제 연구 결과 젊은 근로자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근로자일수록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기피하는 기업이 많지만, 실제 연구 결과 젊은 근로자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이 꼽은 ‘기업들이 나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직접 고령 근로자를 고용해보는 것’이다. 지은정 부연구위원은 “60세 이상 고령자를 고용한 사업체는 미채용한 사업체에 비해 60세 이상의 생산성을 높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령자와 함께 일하거나, 자주 접촉한 경우 고령자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어 “연령차별이 약한 사업체는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게 평가하고 채용도 많이 해 연령에만 근거해 평가하지 않으면 고령자도 각자의 직무역량에 따라 적절히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직업 전환 전 재능·재정상태 따져야

고령 근로자가 자신있게 전직에 뛰어드는 것은 좋지만,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늦은 나이에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와 높은 직급, 연봉 등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비즈니스 분야 전문 기고가인 브래드 쇼어(Brad Shorr)는 ‘중년의 나이에 경력을 바꾸기 전 따져봐야 할 4가지(4 Important Things To Consider Before Making A Midlife Career Change)’라는 칼럼을 통해 고령 근로자의 전직에 대해 조언했다.

쇼어에 따르면, 먼저 ‘열정’ 그 이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쇼어는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열정이 필요한 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새로운 직업으로 뛰어들기 전 당신이 가진 재능의 정도를 냉정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노래를 좋아하는 것과 노래로 ‘돈을 버는 것’은 다르다는 뜻이다.

일하는 데 필요한 의지와 능력도 재능과 함께 점검해야 한다. 그는 “새로운 직업을 갖는 데는 20대의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많은 50대들은 가족, 여행, 취미생활 등 많은 일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며 “새로운 직업을 갖기 위해선 이 같은 좋은 시간들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재정 상태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쉽게 직업을 바꿀 수 있고, 그 새로운 직업에서 지금과 같거나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면 괜찮다. 그러나 일반적인 직업 전환은 연봉과 복지 혜택, 경력 삭감을 동반한다. 쇼어는 “나이가 들수록 보험 등 건강 관련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 부양 가족이 있는 경우는 더더욱 급격한 재정 변화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50~65세 사이 버는 돈은 노후 준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외에도 쇼어는 직업 전환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이전 직장으로의 복귀 등 ‘플랜 B’를 세워둬야 한다고 했다. 직업 전환에 따른 불확실성을 줄여줌으로써 스트레스받지 않고 편하게 직업 전환 활동에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단순히 일시적인 불만에 의해 직업을 버리려 하지 않는지 등 직업 전환에 대한 ‘동기’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plus point

“뭔가 불안하고 나 혼자다” 이때는 직업 바꿔야 한다

직업을 바꿀 땐 현재 자신의 업무 생활이 어떤지 잘 따져봐야 한다.
직업을 바꿀 땐 현재 자신의 업무 생활이 어떤지 잘 따져봐야 한다.

수년간 종사해온 직업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근무생활을 자세히 살펴보면 직업을 바꿔야 할 신호가 곳곳에 널려있을 수도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금 직업을 바꿀 때인가(Is It Time For You To Make A Career Transition?)’라는 기사를 통해 직업 전환의 시기를 진단할 수 있는 세 가지 지표를 제시했다.

먼저 현 상황에 대한 불만과 권태를 잘 따져봐야 한다. 현재 작업 중인 프로젝트가 교착 상태에 빠졌거나, 상사와 마음이 잘 맞지 않거나, 업무 외 스트레스 요인으로 직장에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요인들은 일시적 불만인 만큼 직업을 바꾸는 원인이 될 수 없다. 다만 현재 자신의 역할과 책임 정도에 비춰봤을 때 장기적 직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 그 결과에 따라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환경을 극복해낼 수도 있고, 직업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두 번째로는 자신이 고립돼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직장 내 경영상의 변화로 자신이 맡고 있던 업무가 사라졌거나, 더 이상 생산적인 회의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자신의 쓰임새에 고민하게 되고, 업무상 만족도를 갈망하게 된다. 이때는 직업 전환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직장 내 자신의 직급을 점검해야 한다. 만약 동기들보다 직급이 낮고, 승진에 한 번 이상 실패했는데도 이에 대한 명확한 피드백을 회사로부터 듣지 못했다면 직업의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 ‘포브스’는 “직업을 바꾸는 것은 굉장히 보람 있는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조금은 두려울 수도 있다”며 “자신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과 전문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영역을 파악해 준비해야 직업 전환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한국에도 부는 연령차별 해소 바람

채용과정에서 연령차별이 만연했던 한국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채용과정에서 연령차별이 만연했던 한국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유교적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노인 공경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지만 고용 관련에서는 정반대 모습을 보인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우리나라 연령주의 실태에 관한 조사연구-노동시장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취업 차별 유형에서 연령차별(18.9%)은 성차별(38.9%), 학력차별(30.7%)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을 권고한 차별 유형에서는 연령차별이 39.8%로 가장 높았다. 정부 기관이 보기에도 부당한 고용 차별 사례가 연령차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한국은 2008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하는 고용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생물학적 나이를 기준으로 특정 근로자를 1명 이상 고용하거나 고용하고자 하는 사업장의 취업가능한 모든 연령층이 연령차별금지법의 적용 대상이다. 채용 과정에서 “나이가 많으신데, 일 잘하실 수 있냐” 등의 질문은 모두 연령차별행위다.

다만 특정 연령이 해당 업무의 정상적인 수행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자격일 경우 등은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 한국마사회가 기수후보생 지원 대상을 만 22세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 연령차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공·민간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령차별에 대해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3월 ‘경찰대학 개혁방안’을 통해 경찰대의 입학 연령 제한을 높였다. 지금까지는 만 21세 미만까지만 경찰대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를 40대 이하까지 허용해 입학 기회를 확대하기로 했다.

은행연합회도 최근 신입행원을 공개채용할 때 성별, 출신학교, 출신지뿐만 아니라 연령까지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발표했다. 이 규준에 따르면 40대 이상의 중장년층도 신입행원으로 지원할 수 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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