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와 멕시코가 미국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북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도로 북미 자유무역협정(나프타·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재협상이 시작된 지 석 달이 지났다.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의 경제협력 관계가 깊은 만큼 합의를 도출하기 더 어려운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나프타는 사상 최악의 무역협정”이라고 발언하며, 폐기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11월 1일 “전 세계와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통해 4조달러(약 4400조원)를 회수하고, 이를 미국 기업을 위해 쓰겠다”고 언급하며 재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해외로 나간 일자리 돌아오지 않을 것”

세계은행에 따르면 멕시코는 수출의 80%를 미국에 의존한다. 미국은 작년 한 해 멕시코와의 무역에서 643억달러(약 71조원)의 적자를 냈으며, 이는 중국·유럽연합·일본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협상을 요구한 원인이자 멕시코가 나프타 폐지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기도 하다.

나프타 재협상의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이 제안하는 ‘일몰 조항’이다. 미국·캐나다·멕시코가 5년마다 협정을 계속 유지할지 여부에 대한 협상을 벌이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협정이 자동 폐기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역내 생산 비중이다. 미국은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소재와 부품의 함량이 85%가 넘는 자동차에 한해서만 무관세를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는 62.5%가 넘으면 무관세를 적용받는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 부품의 50%를 미국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새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의 이 같은 요구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수출의 80%가 미국으로 향하고 있고, 캐나다도 미국이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신흥시장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 닐 셰어링은 “결국 미국은 나프타를 탈퇴할 것이란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 스쿨과 포드햄대, 캐나다 맥길대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요구로 인해 세 국가의 자동차 회사들은 사업 계획과 투자 면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트럼프의 바람대로 해외로 누출된 일자리가 미국에 돌아올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의 나프타 협상팀이었던 안드레아 비요크룬드 맥길대 교수는 “미국이 다른 국가와 맺은 FTA와 베트남·인도 등 노동력이 저렴한 국가의 경쟁력을 고려했을 때 나프타가 트럼프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협상되더라도 미국에 일자리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마우로 기옌 와튼 스쿨 교수는 “오히려 로 나프타로 인해 미국에 대규모 시장이 형성되면서, 남캐롤라이나·테네시·앨라배마 등에 지사를 둔 독일·한국·일본 기업들의 성장이 촉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쥐스탱 트뤼도(왼쪽) 캐나다 총리와 엔리케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사진 : 블룸버그>

트럼프에게 반발하는 자동차 업체들

전문가들은 만약 나프타가 폐지되면, 수출 관련 일자리가 사라지는 반면 다른 기업들은 채용을 늘리기 때문에 고용 면에서 거대한 전환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자동차 부문에 투자한 연기금과 뮤추얼펀드 등의 계획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기옌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프타 폐지는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특히 전문가들은 일몰 조항은 터무니없는 요구라고 비판했다. 2012년 미국 무역대표부 부차관보로 일했던 매트 골드 포드햄대 교수는 일몰 조항 때문에 기업의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들은 중장기 계획이 필요하다”며 “5년 뒤 나프타 합의가 말소될 것이라는 전제가 생긴다면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투자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무역에 영향을 받는 미국 산업계는 트럼프가 일몰 조항을 요구했을 때 상당히 당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옌 교수도 일몰 조항은 미국‧캐나다·멕시코의 경제를 마비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세계의 어떤 무역협정도 일몰 조항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며 “세 국가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나프타가 자동적으로 폐지되면, 협정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무역 관련 기업들의 투자가 동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프타의 혜택을 보고 있는 미국 기업들도 일몰 조항 혹은 나프타의 폐지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나프타 철회 위협에 자동차 제조사들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GM·포드·폴크스바겐·현대차·도요타 등 5개 사는 ‘미국 일자리 창출(Driving American Jobs)’이라는 연합체를 구성해 나프타 자동차 관련 조항 유지를 지지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멕시코 노동단체들이 미국의 북미 자유협정 개정 시도에 반발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제니퍼 토머스 연방 자동차 제조사 연합 부대표는 성명에서 “나프타에서 탈퇴하면 자동차 생산량은 줄고, 일자리는 감소하고 고객들은 새 차를 구입할 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라며 “해외로 자동차를 수출할 때 영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자동차 업계는 변화가 미국의 일자리를 해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생산자 조합(MEMA)과 미국 국제 자동차 딜러 조합(AIADA)은 “3개국 간의 연간 무역액이 1조2000억달러(약1320조원)에 달하는 나프타를 끝내면 미국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재계 인사들도 나프타를 사수하기 위해 의회를 상대로 맹렬한 로비전에 나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재계 인사 130여명이 상원 로비 군단을 이뤄 워싱턴 의회에서 상원의원들을 만나 “나프타를 유지해 달라”고 압박하고 있다. 재계 인사들은 나프타 재협상이나 폐기로 미국 기업이 멕시코나 캐나다에 제품을 수출할 때 관세를 내게 되면 가격 경쟁력이 매우 낮아진다고 우려한다.

빌 레인 무역리더십연맹 회장은 “그동안 법인세 인하 등 행정부의 주요 정책에 혼선을 줄까 우려해 나프타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우리 미국 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법인세를 인하해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인건비가 높은 미국 내 생산을 늘리라는 행정부 주장도 기업들에는 큰 부담이다. 미국 싱크탱크도 나프타 유지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연구를 발표하고 있다. 마크 잔디 무디스애널리틱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나프타를 수정하면 미국에 상당한 손해를 주거나 이익을 주더라도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쥐스탱 트뤼도(왼쪽) 캐나다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 블룸버그>

멕시코, 일부 쟁점에서 한발 양보

멕시코가 그간 마찰을 빚어왔던 일부 쟁점에서 양보하며 나프타 폐지 가능성을 낮춘 것은 주목할 만하다. 11월 15일부터 21일까지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나프타 재협상 제5차 회의에서 일데폰소 과하르도 멕시코 경제부 장관은 한 지역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나프타를 5년 주기로 재검토하자는 미국의 제안(일몰 조항)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멕시코가 나프타 재협상을 계속해 나갈 의사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멕시코의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캐나다는 나프타 재협상 과정에서 멕시코에 최저임금 인상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전 세계에서도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하는 멕시코의 최저임금은 멕시코산 최종재의 가격을 낮춰 북미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멕시코 경제일간지 엘에코노미스타는 “엔리케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하루 80.04페소(약 4675원)인 최저임금을 88.36페소(약 5161원)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엔리케 니에토 대통령은 멕시코가 최근 단행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 결정이 지난 30년간 가장 높은 폭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사소한 조정에 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멕시코의 낮은 임금수준이 무역불공정에 책임이 있다는 북미 국가들의 주장을 수용함으로써 스스로를 방어할 논리를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당 88.36페소라는 최저임금 또한 북미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10분의 1 수준에도 못미치기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가 만족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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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자유무역협정(나프타)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이 관세와 무역장벽을 폐지하고 자유무역권을 형성한 협정. 인구 약 5억명, 연간 교역액이 1조달러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블록 중 하나로 1994년 1월 발효됐다. 미국과 멕시코는 농산물 교역량의 57%에 대해 관세를 폐지했으며, 발효 후 10년간 전체의 94%를, 15년 내 모든 농산물의 교역을 완전 자유화하는 내용이다. 미국의 자본과 기술, 캐나다의 자원, 멕시코의 노동력이 결합돼 지역경제를 발전시켰지만 시장보호와 블록경제화 현상으로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역외국에 무역장벽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plus point

북미 자유무역협정의 효과
미국·캐나다·멕시코 무역량 20년 만에 4배 증가

배정원 기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1993년 12월 나프타에 서명하면서 “나프타는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 간의 무역장벽을 없애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무역 지구를 형성할 것”이라며 “1995년 미국에서만 2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나프타가 미국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자유무역 경쟁이 가져다준 효과를 다른 경제·사회·정치적 요소들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부분은 미국·캐나다·멕시코 간의 무역량이 1993년 2900억달러에서 2016년 1조1000억달러로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국가 간 투자 역시 늘어났다. 멕시코의 미국 해외직접투자(FDI)는 1993년 150억달러에서 2016년 1078억달러로 증가했다. 미국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미국과 멕시코 간 무역에서 미국에 600만개의 일자리가 존재한다. 경제연구소 윌슨센터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건 가격의 1달러 중 25센트는 미국에서 생산된 것이고,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건 가격 1달러 중 40센트가 미국에서 제조된다.

북미개발은행에 따르면, 미국과 멕시코 간 무역은 2015년 5000억달러를 상회했으며, 이는 나프타가 체결된 이후 5배 이상 성장한 수준이다. 오늘날 멕시코는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전체를 합친 것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수입한다.


“美 일자리 감소 원인” 지적도

제로니모 쿠티에레즈 북미개발은행 상무는 나프타의 가장 큰 이점은 북아메리카의 생산 체인을 통합해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십을 구축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멕시코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멕시코 수출의 80%는 미국으로 가고, 멕시코에 투자하는 자본의 50%는 미국에서 온다”며 “더 나아가 나프타는 멕시코의 경제를 현대화하고 개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프타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나프타를 통해 매년 1270억달러만큼의 부를 창출했다. 하지만 미국의 인구가 3억2000만명이 넘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경제적 효과는 인구당 400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의 1인당 GDP가 5만달러라는 것과 비교했을 때 그 효과는 더 미미하다.

일부에서는 나프타가 미국의 일자리 감소와 임금 하락의 주요인이라고 비판한다. 멕시코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미국 기업들이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1994년 멕시코를 상대로 170억달러의 무역 흑자를 보다가 2014년 540억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경제연구센터 딘 베이커의 로버트 스코트 연구원은 “멕시코로부터 수입이 급격히 증가한 지난 20년간 미국에 60만개 일자리가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 스쿨의 모리스 코헨 교수는 미국의 고임금 제조업 일자리가 나프타로 인해 멕시코·중국 또는 해외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점은 인정하지만, 나프타가 미국 경제에 많은 이점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늘어난 일자리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활동은 북아메리카의 공급 체인을 보다 견고히 했다”며 “이는 북미의 자동차 기업들로 하여금 세계 무대에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경쟁력을 갖추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배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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