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임을 발표한 멕 휘트먼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 회장. <사진 : 블룸버그>

‘실리콘밸리를 호령하던 여제(女帝)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멕 휘트먼(Meg Whitman·61)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HPE)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내년 1월 1일 자로 HPE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11월 21일(미국 현지시각) 전격 발표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기업인인 휘트먼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재계의 시선이 그의 다음 행보로 모아지고 있다. 정치적 야망이 강하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경력을 들어 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를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휘트먼 회장은 성명을 통해 “이제 다음 세대 지도자들이 HPE를 이끌 때가 왔다”며 “지금 회사에는 전문적인 엔지니어가 필요하며 새 경영진이 회사의 미래를 더욱 번창하게 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의 사임은 HPE가 4분기 매출 78억7000만달러(약 8조7000억원), 조정 주당순이익(EPS) 31센트 등 월스트리트의 예상치를 넘어서는 호실적을 올렸다는 발표와 함께 이뤄졌다.

올해 6월 야후 매각 과정에서 퇴직금 2300만달러(약 255억원), 스톡옵션 2억6000만달러(약 2880억원)를 챙긴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마리사 메이어 전 야후 최고경영자 등을 의식, 기업 실적이 좋을 때 박수받으며 떠나려는 전략적인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후임 회장은 안토니오 네리(50) HPE 사장으로 정해졌다. 엔지니어 출신인 네리 차기 회장은 지난 6월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휘트먼 회장의 후계자로 급부상한 인물이다. 휘트먼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나지만 HPE 이사직은 유지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스타트업’ 이베이 최고 회사로 키워

2011년 HPE 회장에 취임한 휘트먼 회장은 ‘세기의 기업 분할’로 불린 HP와 HPE의 분할을 주도하는 등 ‘병든 거인’ HP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글로벌 PC 시장이 쇠퇴하는 추세를 감안, 2014년 HP를 기업 고객 중심의 HPE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PC·프린터 사업부의 HP Inc. 등 두 개 회사로 분할했다. 직원 3만여 명을 감원하고 180억달러(약 20조원)에 달하는 기업 인수·합병(M&A)을 주도했다.

올해 미국 대기업들의 주가가 평균 30% 오르는 가운데 HPE의 주가는 6%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M. 사코나기 번스타인리서치 애널리스트도 “이베이 시절과 달리 그는 완벽한 현실주의자로 행동했고 전반적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휘트먼 회장은 ‘포천’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2014년, 2017년은 7위)에 선정되는 등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기업인이다. 뉴욕타임스는 2008년 휘트먼 회장을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가장 근접한 여성’으로 선정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휘트먼 회장이 세계 최대의 온라인 경매 회사인 이베이와 HPE 등 ‘포천 500대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두 차례 역임한 역사상 유일한 여성 전문 경영인”이라고 보도했다.

휘트먼 회장은 온라인 경매 회사 이베이의 최고경영자(1998~2008)로 10년간 재직하면서 최고의 기업으로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1998년 당시 유명 장난감 회사인 하스브로 사장이던 그가 이베이 최고경영자로 자리를 옮기자 상당한 화제가 됐다. 월트 디즈니 전략담당 부사장 출신으로 유명 장난감 회사 최고경영자가 된 ‘엘리트 경영인’이 직원 30명, 연 매출 400만달러(약 44억원)에 불과한 ‘무명 스타트업’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이직했기 때문이다.



멕 휘트먼(왼쪽 네 번째) 회장을 비롯한 HPE 경영진이 2015년 11월 2일 HPE의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기념 개장벨 타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정계 진출설은 극구 부인

하지만 휘트먼 회장은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을 극복하고 10년 만에 이베이를 직원 1만5000명, 매출 80억달러(약 8조8800억원)를 올리는 세계 최고의 온라인 경매 기업으로 키운 ‘스타 여성 기업인’이 됐다.

휘트먼 회장의 이직설은 올해 상반기부터 꾸준히 나왔다. 지난 6월 트래비스 캘러닉의 잇단 구설수 등 오너 리스크와 성추문, 간부 간 상호비방 등 조직 리스크로 추락하던 ‘자동차 공유기업’ 우버의 유력한 최고경영자 후보로 부상했다.

하지만 휘트먼 회장 본인이 “절대 그럴 일 없다. 아직 HP에서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극구 부인했고 다라 코스로샤히 익스피디아 최고경영자가 올해 8월 우버의 새 수장으로 낙점되면서 그의 이직설은 잦아 들었다.

그의 사임을 차기 대선 출마 등 정계 진출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휘트먼 회장은 이베이 최고경영자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9년, 돌연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오랜 공화당원인 그는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한 뒤 2010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제리 브라운과 겨뤘으나 41% 득표(제리 브라운은 54%)에 그쳐 낙선했다.

선거 과정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개인 재산(1억4400만달러, 총선거자금은 1억7850만달러)를 쏟아부었으나 정치적인 야망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대신 민주당 후보로 나온 힐러리 클린턴을 공개 지지했다.

케빈 오리어리 ETF인베스트먼트 회장은 휘트먼 회장의 사임 발표가 나온 직후 “휘트먼이 2020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은 50 대 50”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휘트먼 회장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절대 그럴 일 없다”며 정계 진출설을 일축했다. 휘트먼 회장이 “당분간 스키를 즐길 계획이다. 35년 동안 일했고 이제 휴식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거의 없다.


plus point

롬니·매케인 선거 캠프에 참여


멕 휘트먼 회장은 무명 스타트업이었던 이베이를 글로벌 대기업으로 키웠다. <사진 : 블룸버그>

휘트먼 회장은 1956년 미국 뉴욕 콜드스프링 하버에서 태어났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노바스코샤 시의원 등 정치인들을 다수 배출한 유서 깊은 정치 가문 출신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프린스턴대에서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다가 여름 방학 때 잡지 광고를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영에 관심을 갖게 돼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꿔 졸업했다. 1979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땄다.

1979년 프록터 앤드 갬블(P&G)에 입사한 뒤 베인 앤드 컴퍼니, 월트 디즈니(전략담당 부사장)를 거쳐 하스브로 최고경영자였던 1998년 이베이 최고경영자로 자리를 옮겼다.

2008년 대선 초반 미트 롬니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했다가 존 매케인이 공화당 후보가 된 뒤 매케인의 대통령 선거운동본부 공동의장으로 활동했다. 2012년 대선에서도 롬니 후보를 지지했다. 롬니와 매케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휘트먼 회장을 재무장관에 지명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뒤 2011년 1월 휴렛팩커드 이사로 부임했다. 이어 같은 해 9월 최고경영자가 됐다.

1980년 신경외과 의사인 그리피스 하시와 결혼,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개인 자산은 28억달러(2017년 8월 현재)로 알려져 있다.

방성수 조선비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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