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에 따르면, 에스파 현실세계 멤버들과 아바타 ‘아이(ae)-에스파’의 의식이 동기화돼 있다. 사진은 에스파 카리나가 아바타 아이-카리나와의 의식이 끊어지는 함정에 빠진 모습. 사진 SM엔터테인먼트
SM에 따르면, 에스파 현실세계 멤버들과 아바타 ‘아이(ae)-에스파’의 의식이 동기화돼 있다. 사진은 에스파 카리나가 아바타 아이-카리나와의 의식이 끊어지는 함정에 빠진 모습.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1년 가장 화제가 된 국내 걸그룹은 에스파다. BTS를 제외한다면 아이돌을 통틀어 가장 큰 히트를 쳤다. 영화 ‘분노의 질주: 홉스&쇼’ OST의 동명 곡을 리메이크한 ‘넥스트 레벨’로 크게 인기를 끌며 그들의 SM엔터테인먼트(SM) 선배 걸그룹인 레드 벨벳과 세대교체까지 하는 모양새다. 에스파는 코로나19로 인해 활동 범위가 국내로 줄어들고, 따라서 큰 투자를 하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새로 아이돌 시장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에스파에게 엄청난 관심이 쏟아진 이유는 또 있는데, 바로 이들이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를 활용한 팀이라는 데 있다.

SM은 새로운 그룹을 론칭할 때마다 시대를 앞서나가는 기획을 보여 왔다.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초등학교 때부터 트레이닝을 거친 보아. 아이돌은 노래를 못한다는 이미지를 깨기 위해 아예 메인 보컬로 키웠던 멤버들로만 구성했던 동방신기 등 당대의 기준에서 보면 늘 파격적이었다. 에스파는 2010년대 중반부터 SM이 주장했던 뉴 컬처 테크놀로지 전략의 소산이다.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을 결합한 팀을 만들되, 지나치게 테크놀로지적인 점이 부각되지 않도록 매만졌다. 그 결과 네 명의 실제 멤버에게 가상 공간에서 활동하는 캐릭터(아바타)가 존재하고, 실제와 아바타가 상호 협력해서 모험을 한다는 세계관을 구축했다.

1992년 미국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처음으로 등장한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소설의 출간 연도에서 알 수 있듯 아날로그 시대의 상상이었다. PC와 개인 이동통신이 보편화하기 전의 세상이었으니, 가상의 세계에서 서로가 연결되어 사회 활동을 한다는 건 발상만으로도 참신했다. 하지만 그 미래는 머지않아 닥쳤다. 21세기를 전후해 사이버 가수가 등장하고, 싸이월드가 히트를 치면서 모르는 이들끼리 쉽게 연결되는 세계가 열렸다. 싸이월드의 ‘미니미’라는 이름의 아바타는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리니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게임들이 등장한 이후에는 온라인 게임이 하나의 세계가 됐다.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게임상에서도 일어났고, 어떤 사례는 논문이 되어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그리 크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즉 온라인 커뮤니티와 게임에서 메타버스는 늘 존재해 왔던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 가상 세계를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 ‘증강현실(AR)’ 등 다양한 이름으로 칭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메타버스와 가상의 현실을 일컫는 기존 명칭의 차이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 개념을 소화하는 세대의 차이다. 1990년대 이후 출생자에게는 디지털 세상에 친숙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사춘기, 혹은 그 이전부터 학습이 아닌 습득과 놀이를 통해 사이버 월드의 문법을 체득했다. 놀이터보다 게임으로 친구를 만났고 사회화를 했다. 대부분의 유행어가 게임과 그와 관련된 커뮤니티를 통해 등장하고 퍼졌다. 따라서 그들에겐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이전 세대보다 희박하다.

두 번째, 기술의 발전이다. 2차원(2D)은 3차원(3D)으로 진화했고, 실제 영상과 CG의 차이가 없어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된 온라인 콘서트가 큰 위화감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팬덤의 힘에 기반했기 때문은 아니다. 에스파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세계관’을 구축하고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은 현실보다는 가상이 적합하다. 아미가 BTS의 뮤직비디오와 트윗을 보며 만드는 BTS 세계관이 기성세대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게 하지만 새로운 세대에겐 하나의 놀이이자 열광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실제와 가상의 구분이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에게는 의미가 없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에스파는 8인조 걸그룹이다. ‘에스파’와 아바타인 ‘아이(ae)-에스파’로 이뤄져 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메타버스를 활용한 에스파는 8인조 걸그룹이다. ‘에스파’와 아바타인 ‘아이(ae)-에스파’로 이뤄져 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로 규정된 메타버스는 장밋빛 미래일까.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다. 그간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음악 산업과 공연 분야도 꾸준히 급성장해 왔다. 음원 다운로드, 스트리밍의 등장으로 음악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역으로 공연장에 가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다. 티켓 예매 및 동선 확보 등 공연 관람을 위해 필요한 내용 역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용이해졌다. 무엇보다 음반 시대에 비해 줄어든 수입을 채우기 위해 음악계는 더 많은 공연을 해야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내한 공연이 늘어난 이유 또한 해외 아티스트들의 투어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본 산업 또한 공연이었다. 침식이 아니라 붕괴 수준으로 산업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특히 K팝 붐과 함께 새로운 블루칩으로 떠오르는 한국이 그랬다. 지난해 방송국 관계자들은 “올해만큼 특급 아이돌 섭외가 쉬운 적이 없었다”라고들 말했다. 해외 스케줄이 일거에 취소되면서 모두 국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온라인 콘서트였다. 록이나 힙합처럼 실제 연주와 가창을 오프라인에서 경험하는 게 중요한 해외 주류 장르와는 달리, 댄스에 더욱 비중을 두는 아이돌 산업은 상대적으로 대규모 온라인 콘서트를 연출하기에 적합했다. BTS, 슈퍼엠 같은 특급 아이돌의 온라인 콘서트는 막대한 성공을 거뒀고, 따라서 해외보다는 한국에서 메타버스의 개념이 더욱 대두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향후 음악 산업의 향방을 가르는 유의미한 키워드일까. 그 답은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몇몇 특이한 사례가 있을 뿐, 음악 산업에 하나의 분기점을 만든 사례는 아직 없는 게 사실이다. 메타버스를 음악 산업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기존과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한 기술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아이돌처럼 규모의 경제학을 실현하지 못한 단계의 뮤지션들에게는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아이돌을 제외한 다른 뮤지션들의 온라인 콘서트 등 다양한 메타버스 시도들이 성공한 사례가 없는 이유다.

게다가 내년을 계기로 공연 산업이 재개되면, 그동안 공연에 목말랐던 이들의 수요가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메타버스 만능론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주장은 과거 증강현실, 사이버스페이스, 블록체인처럼 이상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나마 과거의 개념들이 세계적 IT의 이슈였던 반면, 메타버스는 해외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개념이다. 어쩌면 이 개념이 새로울 것 없는, 시대에 따라 반복되는 키워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까지의 메타버스를 ‘키워드 팔이’ 이상의 현상으로 보기 힘든 이유다.

무엇보다 메타버스의 성공 사례로 여겨지는 에스파 사례는 실제 인물과 음악을 바탕으로 하기에 가능했다. 가상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복제다. 잊지 말아야 할 명제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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