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으로 천하를 차지한 한고조 유방은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당초 고집을 버리고 과감하게 문치를 추진, 왕조 200년의 기틀을 다졌다. 이에 반해 현 정권은 ‘촛불’로 정권을 잡았다고 임기 내내 ‘촛불’을 내세워 왔다. 사진은 2016년 12월 1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8차 촛불집회. 사진 조선일보 DB
무력으로 천하를 차지한 한고조 유방은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당초 고집을 버리고 과감하게 문치를 추진, 왕조 200년의 기틀을 다졌다. 이에 반해 현 정권은 ‘촛불’로 정권을 잡았다고 임기 내내 ‘촛불’을 내세워 왔다. 사진은 2016년 12월 1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8차 촛불집회. 사진 조선일보 DB

907년 당(唐)이 망한 뒤 송(宋)이 건국되는 960년까지 50년간 다섯 왕조가 명멸(明滅)했다. 각각의 평균 수명은 불과 10년. 200~ 300년간 이어진 왕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다. 그 판도도 북방 일대에 그쳤고, 남방과 서부 및 북쪽 일부에는 10개의 군소 국가가 세워졌다. 이러한 형세가 979년에 완전 통일로 종식된다. 이른바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다. 이후 송은 160여 년간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다가 여진족의 침입으로 북방을 잃고, 남방으로 이주한 뒤 다시 150여 년 명맥을 이어간다. 300여 년 지속되었으니 앞의 단명 왕조들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송이 장수 왕조가 된 데에는 하나의 사건이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이른바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건국 직후 창업군주 조광윤(趙匡胤)은 직전 왕조들의 역사를 거울삼아 건국에 공을 세운 무신들의 병권을 모두 박탈했다. 그 방식은 한고조(漢高祖)나 명태조(明太祖) 등과 달리 토사구팽(兔死狗烹)식 피의 숙청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한잔의 술을 권하며 이룬 신사협정이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바뀌는 시류에 잘 대처한 것이 조광윤의 성공 비결이었다. 정권 창출에는 무장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과감히 정리한 것이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 ‘구약성경’의 ‘전도서’에는 60년대 전설의 명곡 ‘Turn! Turn! Turn!’의 가사가 된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중략)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후략)” 이 말은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과도 상통한다. 모든 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아니라, 언제나 변하니 때마다 잘 대처하고 지나간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역경(易經)’의 근본 이념도 바로 늘 고정되어 있지 않은 세상 모든 것의 변화에 잘 순응하자는 취지다.

이 모든 인류 선배의 가르침은 개인과 사회와 국가를 막론하고, 과거의 성공과 영광에 대한 자만과 그리움, 실패와 굴욕에 대한 좌절과 아쉬움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늘 변하는 시류를 능동적으로 잘 헤쳐나가자는 것이다. 인류의 정신 건강과 사회의 정상적 발전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이러한 진취적인 사고는 고금을 막론하고 뭇 현인들이 두루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관자(管子)’는 이렇게 말했다. “일에는 당면한 업무보다 급한 것이 없고, 다스림에는 조화를 얻는 것보다 귀한 것이 없다…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으며, 시세에 맞추어 바꾸고 대중에 맞추어 옮겨야 한다(事莫急於當務, 治莫貴於得齊…不慕古, 不留今, 與時變, 與俗化).” 또 위정자가 업적 쌓기에 급급한 나머지 시의적절치 않은 사업을 무리하게 벌이는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경계의 말을 잊지 않았다. “억지로 만들고 지으려 하지 말고, 때가 이르면 그때에 맞는 일을 추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로 공정함을 해쳐서는 안 되며, 대중이 싫어하는 바를 살펴서 스스로 삼가도록 해야 한다(勿創勿作, 時至而隨. 毋以私好惡害公正, 察民所惡以自爲戒).” ‘안자춘추(晏子春秋)’는 “제때 할 일을 아는 자가 호걸이며, 기회에 맞게 변화할 수 있는 자가 영웅이다(識時務者爲俊傑, 通機變者爲英豪)”라고 말한다.


송태조 조광윤은 무장들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았으나,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그들의 병권을 모두 박탈했다. 사진은 이 같은 내용의 ‘배주석병권’ 고사를 묘사한 중국 역사 삽화. 현 정권은 좌파 세력에 힘입어 정권 창출을 했다고 하여 시종 운동권과 좌파 인사들만 요직에 등용, 나라가 온통 좌파 일색이 됐다. 사진 바이두
송태조 조광윤은 무장들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았으나,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그들의 병권을 모두 박탈했다. 사진은 이 같은 내용의 ‘배주석병권’ 고사를 묘사한 중국 역사 삽화. 현 정권은 좌파 세력에 힘입어 정권 창출을 했다고 하여 시종 운동권과 좌파 인사들만 요직에 등용, 나라가 온통 좌파 일색이 됐다. 사진 바이두

‘여씨춘추(呂氏春春)’의 ‘찰금(察今·현실을 잘 살핌)’편에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우화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배 위에서 장검을 물에 빠뜨리자 즉시 단검을 꺼내어 뱃전에 표시했다. 옆 사람이 이유를 묻자 그는 나루에 도착하면 표시된 곳으로 내려가 칼을 찾으려 한다고 대답했다. 과거에 얽매여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우매한 행태에 대한 풍자다. 여기에는 또 다음과 같은 비유가 눈에 띈다. “예컨대 훌륭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병이 만 번 바뀌면 약도 만 번 바꿔야 한다. 병이 바뀌었는데 약을 바꾸지 않는다면, 과거에 장수하던 사람도 지금 상황에서는 요절하게 된다(譬之若良醫, 病萬變, 藥亦萬變. 病變而藥不變, 向之壽民, 今爲殤子矣).”

이 말들은 늘 변화하는 시류를 직시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수시로 당면한 현실에 적합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한때 성공을 거둘 수는 있으나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진시황(秦始皇)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부국강병책과 가혹한 법치로 천하를 통일했으나, 그 뒤에는 변화할 줄 모르고 시종 강압 정책을 펴 대중을 괴롭게 한 나머지 불과 15년 만에 왕조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

이에 반해 유방(劉邦)은 무력으로 천하를 차지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문치를 펼치고, 그 후계자가 ‘휴양생식(休養生息)’으로 대중을 편하게 함으로써 사회가 안정, 200년간 왕조가 지속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 이런 일화가 있다. 육가(陸賈)가 유방에게 문치를 건의하자 그는 “이 네 어르신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乃公居馬上而得之)”면서 욕을 했다. 육가가 대답했다. “말 위에서 얻었다고 어찌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居馬上得之, 寧可以馬上治之乎)?” 유방은 크게 깨닫고 건의를 수용, 결국 중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창업 군주가 되었다.

이런 차원에서 아직도 널리 회자되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1990년대 이건희 회장의 명언은 비단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개인과 사회와 국가 등 모든 분야에서 되새겨야 할 소중한 교훈이다.

반면에 현 정권을 보면, ‘촛불’ 민심과 좌파세력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았다고 임기 내내 ‘촛불 타령’을 일삼고, 시종 갈라파고스화한 운동권과 좌파 인사들만 등용함으로써 나라 전체가 온통 좌파 일색이 되었다. 이래서야 균형 잡힌 정책으로 나라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특히 취임 첫 사업인 ‘원전 폐기’는 대중의 반대를 무시하고 밀어붙였다. 이런 폭거를 소식(蘇軾)은 다음과 같이 질타했다. “시기에는 적합 여부가 있고, 사물에는 피폐와 흥성이 있다. 따라서 대중이 안정적으로 받아들일 때에는 비록 폭군이라도 이를 폐지할 수 없다. 그러다가 대중이 싫어하면 비록 성인이라도 되살릴 수 없다(時有可否, 物有廢興, 方其所安, 雖暴君不能廢, 及其既厭, 雖聖人不能復).” 그 뒤로도 과거사 청산이니 적폐 청산이니 반일이니 하면서 시의적절치 않은 일만 골라가며 강행, 국익과 민생의 중요한 현안들은 외면하면서 툭하면 ‘촛불’ 운운했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계속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참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 홍광훈
문화평론가, 국립대만대학 중문학 박사, 전 서울신문 기자, 전 서울여대 교수

홍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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