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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만에 1등급 승격된 ‘무통 로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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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묵어야 철들고, 50년은 돼야 정점
51년 만에 1등급 승격된 ‘무통 로칠드’
기사입력 2016.02.05 19:07


2000년대 들어선 2000년, 2005년, 2009년, 2010년산 무통 로칠드가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향해가던 1945년 프랑스 남부 보르도(Bordeaux), 한 유대인 남성이 포도밭으로 뛰어들었다. 18킬로미터 바깥에는 퇴각하던 독일군이 남아있던 상황.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중립국 스위스를 떠나 발각되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프랑스로 자진해 귀환한 이 남성은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의 주인 필립 드 로칠드(Philippe de Rothschild) 남작이었다.

필립 남작은 1985년 내놓은 자서전에서 “전쟁 내내 나는 불안했다. 나치가 점령한 파리에서 아내는 수용소에 끌려갔고, 딸 필리핀은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은신처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에 남겨두고 온 포도밭과 수만병의 와인들, 와인 제조 기술자와 저장고 책임자들의 생사를 하루라도 빨리 알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필립 남작이 이렇게 애정을 쏟은 1945년산 샤토 무통 로칠드 와인은 2007년 2월 열린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와인으로는 사상 최고가인 병당 31만700달러(약 3억7300만원)에 낙찰됐다. 종전 기록은 1985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1787년산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가 기록한 15만달러(약 1억8000만원)였다.

전세계 와인업계에서 프랑스가 차지하는 지위는 굳건하다. ‘전 국토가 포도밭’이라는 프랑스지만 그중에서도 ‘보르도(Bordeaux)’는 ‘부르고뉴(Burgogne)’와 함께 프랑스 와인업계를 받치는 두 축이다. 보르도 일대 포도산지를 전부 합쳐봤자 서울시의 2배 크기지만, 이곳에 자리잡은 ‘샤토(Chateau)’는 7800여개에 달한다. 샤토는 프랑스어로 ‘성(城)’을 뜻하지만 보르도에서는 양조장 시설을 갖춘 포도밭을 말한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7800개 샤토 가운데 가장 좋은 와인을 선보인다고 알려진 다섯개 1등급 샤토(Grand cru) 중 한 곳이다.

1853년 나폴레옹 3세는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앞두고 보르도상공회의소에 보르도 지역 와인 분류를 의뢰했다. 상공회의소와 와인상인들은 61개 와이너리에 1등급부터 5등급까지 차례대로 등급을 매겼다. 기준은 해당 샤토가 얼마나 오래 됐는지, 와인이 그동안 얼마에 팔렸는지였다. 그들은 샤토의 신뢰도와 일관성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역사와 가격이라 여겼다.

1등급은 4개에 불과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오 브리옹(Chateau Haut Brion),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샤토 마고(Chateau Margaux)만이 1등급을 차지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이중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와인이다. 1855년 제정된 보르도 1등급 와인 목록 중 첫 번째 순서에 표기돼 ‘1등급 중의 1등급 와인’으로 불린다. 코르크 마개를 열면 동양적인 허브향이 강하게 나 중국인 부호들에게 인기가 높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입에 머금으면 석회질 토양에서 온 미네랄의 산미와 잘 익은 포도과육이 주는 풍성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어느 한구석 모난 곳이 없어 와인 초보자에게는 ‘비싼 가격에 비해 심심한 와인’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20년 이상 묵은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그만이 가지는 우아하고 세련된 풍미를 자아낸다. 

샤토 오 브리옹은 다른 1등급 와인과 다른 비율로 포도 품종을 섞어 구조감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샤토들이 와인을 빚을 때 절반 이상 사용하는 ‘카베르네 쇼비뇽’이라는 품종 대신 더 여린 ‘메를로(Merlot)’ 비율을 높여 숙성을 덜하고 조금 일찍 마셔도 풍성한 느낌이 드는 와인을 만든다.

샤토 라투르는 보르도에서 가장 오래 묵힐 수 있는 와인으로 꼽힌다. 10년이 채 안된 샤토 라투르 와인은 포도 껍질에 들어있는 타닌 성분이 많아 지나치게 쓴 맛을 보인다. 그러나 원숙한 샤토 라투르는 다른 1등급 와인보다 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1973년이 돼서야 1급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이 와인은 보르도 1등급 와인 중에서도 가장 힘이 좋은 편이다. 잘 익은 샤토 무통 로칠드 와인을 잔에 따르면 처음에는 가을 숲길에서 느껴질 법한 낙엽향과 볏짚향이 올라온다.

이후 잔을 슬쩍 돌리면 무르익은 진한 과실향과 커피향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그리고 곧 은은한 송로버섯향과 민트, 담배, 가죽향이 코를 자극한다. 한모금 입에 머금으면 진한 체리맛 다크 초콜릿을 베어문 듯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다른 1급 와인 ‘샤토 마고’보다 여성스러운 느낌은 부족하다. 샤토 마고는 보르도 1급 와인 중에서도 입 안에서 비단(velvet)과 같은 부드러움이 강하게 느껴진다. 대신 샤토 무통 로칠드는 샤토 마고보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여운이 강하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자갈질이면서 사암이 많은 지형에서 포도를 키운다. 자갈이 많은 땅에선 배수가 잘 돼 당도가 높은 포도가 자란다. 이 때문에 입 안에서 부드러움보다 강한 힘이 충분히 느껴지는 와인이 만들어진다.

좋은 해로 꼽히는 1945년산, 1959년산, 1982년산, 1986년산 무통 로칠드는 100년 가까이 마시기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는 1982년산(産) 무통 로칠드를 맛보고 “이 와인은 영원히 전설로 남을 것”이라며 최고점 100점을 줬다. ‘바로 마시면 후회할 테니 2007년부터 2065년 사이에 따서 마시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이 와인은 만들어진 지 25년 후부터 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 80년이 지나도 그 맛과 향을 유지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 말이다.

2000년대 들어선 2000년, 2005년, 2009년, 2010년산 무통 로칠드가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작황이 좋았던 2009년과 2010년산 무통 로칠드는 현재 국제 와인시장에서 1병당 900~1000달러(약 108만~120만원)선에 팔린다.

2010년 세계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 제라드 바셋은 무통 로칠드를 사람의 일생에 비유해 표현했다. 그는 “무통 로칠드는 사람의 일생을 닮았다. 30년이 지나야 철이 들기 시작해, 50년을 향해 갈 때쯤 정점에 다다른다”고 말했다.

보르도 1등급 와인이라고 해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이라거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른쪽 지역으로만 고개를 돌려도 ‘샤토 페트뤼스’, ‘샤토 오종’과 같은 비슷한 가격의 고급 와인이 즐비하다. 그러니 세계 와인 산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보르도 왼쪽 지역에서 가장 유서깊은 와인이라고 여기는 편이 낫다.

실제로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알려진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와 샤토 무통 로칠드는 맛과 향이 전혀 다르다. 로마네 콩티는 ‘피노 누아(Pinot noir)’라는 포도 품종으로 만든다. 이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면 딸기와 같은 붉은 과실향이 훨씬 촘촘하게 느껴진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가볍지만, 섬세하고 미묘한 향을 뿜어낸다.

미국 캘리포니아 일대에선 보르도 1등급 와인과 유사한 컬트 와인들을 만나볼 수도 있다. 할란(Harlan) 에스테이트,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 시네 콰 논과 같은 미국산 컬트 와인들은 해에 따라 국제 시장에서 1등급 보르도 와인보다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숙성력과 맛 역시 보르도 1급 와인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사: 유진우 조선비즈 기자·와인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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