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으로 야근이 줄어들면서 자기계발에 나서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왼쪽 첫 번째와 마지막 사진은 ‘랭스영’ 영어 스터디 모임, 나머지는 모임 플랫폼인 ‘문토’에서 열리는 다양한 모임들. 사진 C영상미디어 조현호, 문토
근로시간 단축으로 야근이 줄어들면서 자기계발에 나서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랭스영’ 영어 스터디 모임. 사진 C영상미디어 조현호

서울의 낮 기온이 30도를 넘은 6월 23일 오후, 신촌 기차역 앞의 한 건물 8층에 있는 ‘문토 라운지’에 9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문토’는 같은 취향과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3개월 단위로 모임을 할 수 있게 이어 주는 플랫폼이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2주에 한 번씩 주말에 모여서 글쓰기를 하는 ‘2030’ 직장인들이었다. 에어컨 바람이 서늘한 라운지에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들은 ‘여름의 내가 겨울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었다. 모임의 리더는 광고대행사인 TBWA코리아의 카피라이터가 맡았다. 모임이 진행되는 두 시간여 동안 50m2(15평) 남짓한 문토 라운지에서는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각자가 쓴 글에 대한 진지한 평가도 이어졌다.

문토는 3개월 동안 여섯 번 모임을 갖는다.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25만원의 참가비를 내야 한다. 직장인에게도 적다고 할 수 없는 돈이다. 수십만원의 참가비를 내고 여유시간을 쪼개 가면서 모임에 참석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직장에서 매일 보고서만 쓰다 보니까 내 감정을 드러내는 글은 전혀 쓸 기회가 없었다. 전문적인 글쓰기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짧은 글쓰기를 편하게 하고 싶었는데, 이런 모임이 있는 걸 알게 돼서 참가하게 됐다.”

글쓰기 모임 멤버인 홍혜림씨는 매번 수원에서 신촌의 문토 라운지까지 온다. 집과 직장이 모두 수원이어서 신촌까지 올 일이 많지 않지만, 모임 때면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전시기획 일을 하고 있는 고아라씨도 마찬가지다. 고씨는 “시간이 남아서 모임에 오는 게 아니라 직장 생활에서 잠깐이라도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참가하게 됐다”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직장 생활에 치일 수밖에 없는데 이 모임에서만큼은 나를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달라진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마케팅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황보현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회사에서 PC 셧다운제를 더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다”며 “회사에서도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트렌드)을 강조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직장인들의 삶은 달라지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이달부터 시행됐지만, 대기업들은 연초부터 순차적으로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줄였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워라밸 열풍에 근무시간 단축이 더해지면서 직장인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계발이나 취미 생활에 나서고 있다.

전과 비교해 두드러지는 차이 중 하나는 취미 생활을 위한 각종 모임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문토처럼 돈을 내더라도 나와 비슷한 취미와 취향을 가진 사람과 함께하려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유료 독서 토론 모임인 ‘트레바리’는 2015년 8월 생겼는데, 지금은 누적 회원이 1만 명을 넘겼다. ‘2교시’ ‘문토’ ‘플라이어스’ ‘프립’ 등 다양한 직장인 모임 플랫폼이 트레바리의 뒤를 잇고 있다.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모임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나를 위한 투자…자기 계발족도 늘어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처럼 전통적인 형태의 모임에서부터 화장법 배우기, 수제맥주 만들기, 서핑, 타로카드 고민 상담, 유서 작성하기 등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임까지 생겼다. 대학생이나 주부가 모임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직장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미리 문토 대표는 “작년 3월, 플랫폼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두 개의 모임에 참가자가 서른 명이 채 되지 않았다”며 “6월 기준으로 보면 모임만 아홉 개에 전체 참가자는 13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문토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이번 달부터 모임 수를 열다섯 개로 늘렸다.

백화점 문화센터를 찾는 직장인도 부쩍 늘었다.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의 경우 전체 수강생 중 직장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작년까지는 10%에 못 미쳤는데, 올해 들어서는 20%에 육박할 정도로 늘었다. 직장인들이 많이 듣는 평일 저녁시간 강좌 수도 작년보다 10% 많아졌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문화센터 강좌는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하반기에는 여성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를 늘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야근이 줄어들면서 자기계발에 나서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모임 플랫폼인 ‘문토’에서 열리는 다양한 모임들. 사진 문토
근로시간 단축으로 야근이 줄어들면서 자기계발에 나서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모임 플랫폼인 ‘문토’에서 열리는 다양한 모임들. 사진 문토

야근이 사라진 자리를 공부로 채우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 6월 18일 저녁,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는 커피와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겉보기에는 월요병을 달래기 위해 퇴근 후 카페를 찾은 사람들로 보였다. 하지만 문을 열고 카페에 들어서자 테이블마다 외국인이 한 명씩 앉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 바빴다. 영어회화 스터디 모임인 ‘랭스영’이 운영하는 스터디 카페였다.

랭스영의 영어회화 모임은 하루에 두 번 오후, 저녁시간으로 나눠서 운영된다. 한 번에 4시간씩 진행되는데, 아무 때나 와서 빈 테이블에 앉으면 된다.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김민성씨는 “회사 업무로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과 협업할 일이 많은데, 원어민과 대화를 하다 보니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최근 들어 영어회화 모임을 찾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취업 전문 포털 사이트인 ‘잡코리아’가 지난 5월 남녀 직장인 6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자기 계발을 하고 있다’고 답한 직장인이 67.8%에 달했다.

1년 전 조사보다 11.8%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자기 계발을 한다고 답한 직장인 중 30% 정도는 ‘외국어 공부’를 한다고 답했다. ‘운동(27%)’보다도 비율이 높았다. 김영욱 랭스영 대표는 “최근 직장인들의 영어회화 스터디 수요가 늘고 있어서 점심시간에도 스터디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스터디 모임이나 학원을 찾지 않고 나 홀로 공부를 택한 직장인도 적지 않다. ‘빨간펜 선생님’으로 유명한 구몬학습의 경우 2013년까지만 해도 성인 회원이 1만8000여 명에 불과했는데, 작년에 5만여 명으로 늘었다. 특히 외국어 공부를 위해 빨간펜 선생님을 찾는 성인 회원이 많아졌다.


대학원 문 두드리는 직장인도

전 세계 대학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 공개강좌 플랫폼인 ‘무크(MOOC)’나 ‘코세라(COURSERA)’를 찾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 광화문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 남호준씨는 작년에 처음 코세라 강좌를 듣기 시작해 지금까지 모두 12개의 강좌를 들었다. 남씨는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맡고 있어서 전에는 책으로 공부를 했다”며 “혼자 책만 읽기가 조금 지루했는데 코세라에 올라온 회계 강좌를 찾아 보니 내용이 좋고 재미도 있어서 계속 듣게 됐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덕분에 시간 관리가 용이해지면서 아예 대학원에 등록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SK텔레콤의 A 매니저는 대학원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작년까지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야간 대학원을 다녔는데, 올해 들어 회사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자율적 선택근무제를 도입해 일반 대학원을 다닐 수 있게 됐다. SK텔레콤의 자율적 선택근무제는 2주 단위로 총 80시간 범위 안에서 직원 스스로 근무시간을 정할 수 있게 한다.

A 매니저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업무시간을 조금씩 늘려서 금요일에는 오전 근무만 하고 있다”며 “대학원 수업과 관련 미팅을 금요일 오후에 몰아서 잡으면 따로 반차를 낼 필요 없이 회사 생활과 대학원 생활을 병행할 수 있어 편하다”고 설명했다.


plus point

여행족 증가 추세 탄력받을 듯

여행 업계에서는 올해 국내 출국자가 사상 처음으로 30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출국자는 2650만 명이었다. 3000만 명을 넘기려면 출국자 수가 14% 정도 늘어야 하는데, 여행 업계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출국자 수 증가를 이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야근과 주말 근무가 줄어들면서 해외 여행을 떠나는 직장인이 늘 것으로 보는 것이다.

김수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일본도 경기 활성화를 목적으로 1987년 노동기준법을 개정하며 법정근로시간을 줄였는데, 이후 장기간 경기 침체가 계속됐음에도 출국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한국도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법이 시행돼 직장인의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여행을 가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꾸준히 늘고 있다. 만 15세 이상 국민의 연 평균 국내 여행 횟수는 2014년 5.15회에서 2016년 5.51회로 증가했다. 특히 1인 여행객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1인 여행객의 국내 여행 행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여행객 중 1인 여행객 비율이 2013년 4.7%에서 2015년 10.3%로 늘었다.

1인 여행객 중에는 캠핑이나 차박(車泊·차 내부를 개조하거나 차 안에 텐트, 매트 등을 설치해 숙식을 해결하는 캠핑)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캠핑 인구는 2011년 60만 명에서 2016년 500만 명으로 늘었다. 캠핑 관련 용품 등을 포함한 캠핑 시장 규모도 2008년까지만 해도 수백억원대였지만 2016년에는 1조5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여행 업계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평일 저녁에 여행을 떠나는 직장인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당일치기 여행이나 캠핑족들을 위한 여행 상품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주 52시간 시대의 재테크
예·적금 중심에서 주식·부동산 투자 늘려야

이종현 기자

지난 3월 열린 ‘조선일보 부동산 수퍼콘서트’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 투자법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지난 3월 열린 ‘조선일보 부동산 수퍼콘서트’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 투자법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주 52시간 근무는 월급에서 기본급은 적고 그래서 일을 더해서 추가 수당, 시간외 수당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저녁 알바가 있는 삶, 부업 뛰는 삶이 되고 있고, 워라밸은커녕 라이프가 더더욱 뒷전이 되고 있습니다.”

6월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을 쓴 청원자의 우려처럼 ‘주 52시간 근무제’는 노동자의 임금을 하락시키는 효과가 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사무직보다 단순노무직 등 저임금 종사자가 받는 타격이 더 크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던 노동자가 연장근로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월 임금 감소액은 평균 37만7000원이다. 평균 월 급여(328만4000원)의 11.5%가 줄어드는 셈이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비정규직 중에서도 용역·기간제·한시적 노동자의 감소폭이 컸다. 정규직 노동자의 급여 감소폭은 10.5%였지만 비정규직은 17.3%에 달했다.

김상우 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전체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이 1만9421원인 데 비해, 주 52시간 초과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1만3161원으로 나왔다”며 “주 52시간 초과 근로자 중 저임금 근로자가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조기 안착을 위해 정부에서 노동자의 임금 감소액을 일정 부분 보전해주고 있지만 임금 감소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주 52시간 상한제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초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총액 저하는 노동자들이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로소득에 의지하는 시대, 끝나가

임금이 줄어들었다고 마냥 억울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근로시간 단축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인 만큼 이를 인정하고 자산관리 방법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게 재테크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현식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PB팀장(강남스타PB센터)은 “줄어드는 소득을 만회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체 소득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낮추고 금융소득과 임대소득 등 비근로소득의 비율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예·적금 중심의 재테크에서 벗어나 주식, 부동산 등 수익성 자산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 업계에서 주 52시간 근무제의 수혜주로 지목하는 종목들을 눈여겨볼 필요도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기업들이 생산성을 높이고 근태 관리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이나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지원하는 업체들이 주 52시간 시대에 각광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신한금융투자는 ‘더존비즈온’ ‘포스코ICT’ ‘한국전자금융’ 등을 꼽았다. 키움증권은 여행·리조트 업종의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며 대명리조트를 운영하는 ‘대명코퍼레이션’을 수혜주로 제시했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절세 상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올해 연말정산에서는 월세세액공제율이 10%에서 12%로 오르고, 도서구입비와 공연관람비에 대한 소득공제가 신설됐다.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받을 수 있는 소득공제율은 30%에서 40%로 올랐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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