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달라진 건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을 챙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회사가 광화문이고 집은 파주 문정 신도시에 있다. 기존 퇴근 시간으로는 어린이집 하원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탄력근무제 덕분에 30분 빠른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있게 되면서 어린이집이 끝나기 전에 도착할 수 있게 됐다.”

한화케미칼 경영기획팀의 이덕희(37) 과장은 ‘인타임 패키지’를 활용한 뒤에 바뀐 삶을 이렇게 얘기했다. 한화케미칼이 지난 6월 도입한 인타임 패키지는 탄력근무제와 시차 출퇴근제가 핵심이다. 탄력근무제는 2주 8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추가 근무하면 2주 내에 해당 시간만큼 단축근무를 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직원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시차 출퇴근제는 오전 7시부터 10시 사이에 30분 간격으로 출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 과장은 월·수·금요일에는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한다. 두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을 직접 챙기기 위해 일찍 퇴근하는 걸 선택했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 30분에 퇴근하고 있다. 이 과장은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에는 늦게 출근하는 대신 중국어를 배우는 데 시간을 쓰고 있다”며 “바뀐 근무 방식에 적응되면 방통대 수업을 듣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7월 1일 시행된 ‘주(週) 52시간 근무제’가 직장인의 삶을 바꾸고 있다. 이 과장 사례처럼 대기업들이 근무제도를 유연하게 바꾸면서 자기 계발이나 취미 생활을 즐기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2004년 7월 시행된 ‘주 5일 근무제’가 직장인에게 주말을 돌려줬다면, 주 52시간 근무제는 평일 저녁을 돌려줬다는 말까지 나온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됐다고 하지만 새로운 법이 만들어진 건 아니다. 기존 근로기준법의 허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진 것이다. 과거 근로기준법도 하루에 8시간씩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연장근로도 일주일에 12시간을 허용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7월 1일 시행된 개정 근로기준법과 다를 게 없다. 달라진 건 토요일과 일요일이 ‘근로일’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길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낮아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근로기준법의 일주일을 ‘월~금요일’로 봤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각 8시간씩 총 16시간의 초과근무가 가능했다. 이렇게 되면 총근로시간이 68시간(40+12+16)이나 된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일주일에 토·일요일이 포함된다’는 내용을 명문화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최대 16시간 할 수 있었던 초과근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위반은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 즉,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노사가 합의했든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일을 더 했든, 주 52시간 이상 일하다 적발되면 사업주가 처벌받게 된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한 사업주와 해당 업무를 담당한 임직원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주 52시간 근로 법제화와 제도 개선 등을 통해 “2022년까지 근로시간을 1800시간대로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임금노동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016년 기준 205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348시간) 다음으로 길다. 한국 노동자들은 OECD 평균(1707시간)보다 300시간 이상 더 일하고 있고,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1298시간)보다는 무려 700시간 이상 더 일하고 있다.

긴 근로시간에도 불과하고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33.1달러로 OECD 평균인 47.1달러에 한참 못 미친다. 노동생산성은 노동자 1명이 1시간에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말한다. 정부에서는 장시간 노동을 낮은 노동생산성과 잦은 산업재해의 원인으로 보고 근로시간 단축에 고삐를 죄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시간이 1% 감소하면 노동생산성이 0.78% 오르고, 산업재해율은 3.7%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도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강행한 이유 중 하나다. 지난 5월 기준 취업자 수는 2706만4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7만2000명 증가에 그쳤다. 올해 2월 이후 취업자 수 증가 규모가 10만 명대에 머물다 5월 들어 10만 명 밑으로 주저앉은 것이다. 보통 취업자 수 증가 규모가 30만 명은 돼야 고용 시장이 좋다고 본다. 고용률은 떨어지고 실업률은 오르면서 고용 시장에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기업 입장에선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고용을 늘려야 한다. 노동연구원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신규 채용 규모를 13만7000~17만8000명 수준으로 예상했다. 다른 연구기관들도 비슷한 규모의 고용 창출 효과를 예상하고 있다. 

김상우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기업 규모별로 보면 30~299인 사업장이 고용을 늘릴 확률이 48.1%로 가장 높고, 5~29인(36.9%), 300인 이상(14.4%)순으로 추정된다”며 “30~299인 사업장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는 시점에 고용 창출 효과가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근무제도 바꾸느라 분주

주 52시간 근무제를 바라보는 재계의 입장은 또 다르다. 장시간 근로의 폐해를 충분히 알고 있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이견이 없지만, 정부가 일방통행식 행정을 한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준비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재계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여 6개월간 계도기간을 준 것이 위안거리다.

대기업들은 한화케미칼처럼 탄력근무제, 유연근무제 등을 도입하며 주 52시간 근무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월부터 사무직을 대상으로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했고, 생산직은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을 넘지 않도록 했다. 쌍용차는 생산직 근무 형태를 주·야간 2교대에서 밤샘 근무를 없앤 주간 연속 2교대로 바꿨다. 근무제를 바꾸면서 노동자 한 명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이 기존 10.25시간에서 8.5시간으로 줄었다. CJ그룹과 롯데그룹 등은 ‘PC 오프(셧다운)제’를 도입했고, 업무시간 외에 소셜미디어로 업무 지시를 하지 않게 강제했다.

한 대기업의 인사팀 관계자는 “사무직 노동자는 전부터 52시간 넘게 일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생산직 노동자의 근무 방식을 조정하는 게 까다로웠다”며 “남은 과제는 근로시간이 감소한 만큼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7월 1일부터 적용됐고,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 1일부터 적용된다.

시화공단의 한 금속가공 업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조선일보 DB
시화공단의 한 금속가공 업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조선일보 DB

재계에서는 50~299인 사업장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는 2020년에 큰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대기업보다 떨어지는 데다 국내 중소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이기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의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대기업의 공급사슬에 엮여 있기 때문에, 대기업이 필요로 할 경우 즉시 대량으로 납품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근로시간 단축 때문에 이 같은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기업 규모에 따라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인한 기업 부담을 추정했는데, 30~299인 사업장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5조3333억원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3조6637억원)보다 많았다. 1~29인 사업장의 비용 부담도 3조3270억원으로 적지 않았다. 기업 전체로 보면 추가 비용 부담이 12조원을 넘는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52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많은 제조업과 영세 사업장 위주로 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업종으로 보면 비용 부담의 60%가 제조업에 집중되고 있어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현행 2주 또는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특정 단위기간에 평균 근로시간을 준수하는 것을 전제로 필요시 추가 근무를 허용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일이 몰릴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일이 없을 때는 쉬게 해주는 제도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 독일 같은 선진국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보완책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길게 설정하고 있다”며 “대기업으로부터 납기를 지키라는 독촉에 시달리는 하도급 중소제조 업체를 위해 중소기업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근로시간 단축 다음 과제는 ‘포괄임금제’

전자상거래 업체인 ‘위메프’는 지난달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국내 주요 기업 중 공식적으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한 것은 위메프가 처음이다. 위메프는 “연간 수십억원의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불필요한 야근이나 휴일 근로가 사라지기 때문에 회사에 유리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위메프 이후 웹젠을 비롯한 여러 기업들이 하나둘 포괄임금제 폐지를 선언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노동자의 야근이나 특근을 미리 계산해서 연봉에 포함시키는 제도다. 영업직이나 운송, 경비 등 외근이 많고 근로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업종을 위해 도입된 제도인데, 사무직이나 정보기술(IT) 업종에서 무제한 노동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10인 이상 사업장 중 52.8%가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괄임금제의 문제는 미리 주기로 한 돈보다 더 많은 업무를 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6년 실시한 조사를 보면 실제 일한 시간이 포괄임금제에 포함된 고정 수당을 넘어섰을 경우 차액을 지급한다고 답한 기업은 전체의 9.4%에 불과했다.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기업 열 곳 중 아홉 곳은 미리 준 돈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정부도 ‘공짜 야근’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포괄임금제의 개선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 차원에서 포괄임금제를 적용할 수 있는 업종을 명확하게 규정한다는 방침이다. 일반 사무직은 포괄임금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 유발, 실근무 시간에 따른 임금 미지급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포괄임금제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보고 구체적인 지침을 곧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독일 등 선진국은 노사 자율 보장

독일 하노버에 있는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독일 하노버에 있는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독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동자의 연간 근로시간이 가장 적다. 1298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노동생산성은 59.9달러로 한국의 두 배에 가깝다.

독일이 적게 일하면서도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노사(勞使)의 자율성을 폭넓게 보장해주는 것을 비결로 꼽는다. 독일의 법정 근로시간은 하루에 8시간이지만 노사 간 자율적인 협약을 통해 근로시간을 결정할 수 있다. 주간 단위의 법정 근로시간은 아예 규정이 없고, 연장근로 한도도 법적으로 정해놓지 않고 있다. 

독일은 노동자가 초과근로를 하면 나중에 휴가와 바꿀 수 있는 ‘근로시간 계좌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제도도 법으로 정해놓지 않고 개별 사업장에서 노사가 세부 사항을 정한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로시간 제도에서 한국과 독일의 가장 큰 차이는 자율성에 있다”며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은 정부가 큰 틀만 만들어 놓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노사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정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논란이 된 근로시간 기준도 마찬가지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한국에서는 휴식시간, 교육시간, 출장, 회식 등이 근로시간에 포함되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기업에 따라 ‘근로시간이다’ ‘아니다’라는 식으로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놨다. 재계에서는 고용노동부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근로시간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특정 행위가 근로시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사용자의 지시 여부, 업무 수행을 거부했을 때 불이익이 생기는지 여부, 시간이나 장소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애초에 법이나 규정으로 정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4년 휴게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판결에서 “근로시간 인정 여부는 특정 업종이나 업무의 종류에 따라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여러 사정을 종합해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딜로이트컨설팅의 김성진 이사는 “부서 회식처럼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국가나 기업마다 근로시간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경우도 많다”며 “해외에서는 오래 전부터 근로시간 해당 여부에 대해 노사가 합의해서 논란이 없지만, 한국은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여서 한동안 진통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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