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6월 준중형 해치백 벨로스터의 고성능 모델 ‘벨로스터 N’을 출시했다. 현대차가 기술 경쟁을 통해 벤츠, BMW 등 글로벌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품질 좋은, 고성능 차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는 6월 준중형 해치백 벨로스터의 고성능 모델 ‘벨로스터 N’을 출시했다. 현대차가 기술 경쟁을 통해 벤츠, BMW 등 글로벌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품질 좋은, 고성능 차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사진 현대차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올 1~5월 누적 기준 판매 대수는 물론 판매액에서도 벤츠와 BMW에 밀렸다. 쌍용자동차는 두 해외 브랜드와 비교해 판매 대수는 많았지만 판매액은 훨씬 적었다. 이렇게 국산 자동차의 판매 부진이 심화되면, 올 초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와 같은 자동차 업계 구조조정 압력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내 완성차 업체에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이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내수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를 한국 자동차 산업의 공급 독점 구조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업체 간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보면 현대·기아차가 6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가 오랫동안 국내 1위 자리에 안주하면서 위기의식을 잃고, 서비스 개선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때 국산차를 구입하는 것이 애국으로 비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해마다 반복되는 파업과 인색한 소비자·주주가치 보호, 제품 다양성의 부족 등으로 국산차에 대한 로열티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반면 수입차는 벤츠, BMW뿐만 아니라 20여 개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며 국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특히 고급차 시장에서의 경쟁은 더 치열하다. 수입차가 고연비와 다양한 라인업으로 무장하고 고급 승용차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는 그동안 가성비를 앞세워 국내 소비자를 유혹했지만, 수입차가 다양한 모델과 가격대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면서 이러한 장점이 희석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매년 20여 개의 해외 자동차 생산 업체가 다양한 신차를 국내 시장에 선보이고 있고, 가격을 파격적으로 할인한 것이 최근 수입차 판매 호조의 원인”이라며 “국내 완성차 업체가 중장기적인 내수 시장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완성차 업체가 다양한 신차 출시, 차량 품질과 성능 향상, 전기차 등 미래차 기술 개발, 고객 만족도 제고, 노사 관계 선진화, 애프터서비스(AS) 우위 확보 등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소비자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차급의 신차 개발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기아차가 최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개발에 나선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올해 말 코드명 ‘LX2’로 개발 중인 대형 SUV를 시장에 내놓는다. 2015년 베라크루즈가 단종된 이후 3년 만이다. 기아차도 모하비 기반의 대형 SUV를 출시할 예정이다.

차량 품질과 성능 향상을 통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힘쓰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6월 준중형 해치백 벨로스터의 고성능 모델 ‘벨로스터 N’을 출시했다. 그동안 현대차는 준중형 세단 아반떼와 중형 쏘나타 등 무난하고 대다수의 입맛에 맞는 차량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 경쟁을 통해 벤츠, BMW 등 글로벌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품질 좋은, 고성능 차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대차가 양적 확대에 주력했던 과거와 달리 고급화, 브랜드 가치 제고와 내실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2015년 11월 출시한 제네시스 브랜드도 고급화 전략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 제네시스는 프리미엄 시장의 격전지로 여겨지는 미국 시장에서 지난 2년간 총 4만8000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스포츠 세단 G70을 출시한 제네시스는 G80, EQ900과 함께 세단 라인업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전기·자율주행차는 캐치업 전략 안 통해

국내 완성차 업체가 수입차와 한판 승부를 펼치기 위해선 미래 자동차 기술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그동안 현대차는 미래 시장을 선점하는 방식이 아닌 성장한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쫓아가는 이른바 ‘캐치업(catch up)’ 전략으로 성장했다. 과거에는 이런 방식이 통했지만, 미래 시장에선 쉽지 않다.

특히 자율주행과 전기차, 공유경제 등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현대차의 대응은 이미 한발 늦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동력 모델 개발과 상용화에 투자할 예정인 금액만 100조원을 상회하고 있다”며 “이 회사들은 국내 전기차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자 전기동력 모델을 적극적으로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가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 전기차 등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대응하지 못하면 지금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plus point

이륜차 강자 대림자동차 독·일·중에 밀려 매각

국내 이륜차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대림자동차는 지난해 7월 이륜차 사업을 경쟁사 KR모터스(전 효성기계공업)에 매각했다. 40년 동안 시장 선두를 지켰던 이 회사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국내 이륜차 시장이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국내 이륜차 시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간 30만 대 규모에 달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9만~10만 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해외 브랜드의 국내 시장 진입으로 인한 경쟁 심화에 있다. 그 결과 2005년 7만3000대의 이륜차를 생산했던 대림자동차는 10년 만에 3만 대 수준으로 생산량이 줄었다. 반면 기술력과 중저가로 무장한 혼다·스즈키 등 일본산 이륜차들은 시장을 넓혀나갔다. 중국산 값싼 이륜차도 쏟아졌다. 고가의 레저용 이륜차 시장은 BMW(독일), 할리데이비슨(미국), 두카티(이탈리아) 등 해외 명품 제조사가 차지했다. 결국 대림자동차는 일본의 기술력, 중국의 가격 경쟁력, 독일·미국 등의 브랜드 파워에 밀려 경쟁사 KR모터스에 매각됐다. 내수 지위에 만족하다가 기술 개발, 새로운 시장 개척을 등한시해 야기된 이 사례는 4륜차 업계에 미리 주는 경고일 수 있다.

plus point

볼보, 만 등 유럽 대형트럭 점유율 10%에서 40%로 껑충

볼보의 대형 트럭 ‘FH’. 사진 볼보트럭
볼보의 대형 트럭 ‘FH’. 사진 볼보트럭

국내 대형트럭(덤프·트랙터·카고 등 5t 이상) 시장 규모는 연간 2만 대에 불과하지만, 대당 가격이 비싼 것은 2억원이 넘고, 비싼 만큼 마진율도 높아 국산차와 수입차 간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현대자동차가 점유율 40%가량을 차지하며 대형트럭 시장 1위를 기록하고 있고, 그 뒤를 타타대우상용차(20%)가 잇고 있다. 나머지 40%는 스웨덴의 볼보와 스카니아, 독일의 만과 벤츠 등 수입차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금액으로 따지면 수입차 점유율은 절반을 훨씬 넘는다.

사실 국내 대형트럭 시장은 10여 년 전만 해도 현대차 70%, 타타대우 20%, 수입차 10%의 양상이었다. 그러나 2015년 유로6가 도입되면서 배출가스 기준이 강화됐고, 이에 힘입어 유럽산 수입 트럭 판매가 급격히 늘었다. 

대형트럭에 적용하는 유로6는 이전 유로5보다 질소산화물은 5분의 1로, 미세먼지는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 기준이다. 유럽은 2013년 12월 유로6를 도입했고, 한국은 2015년 9월 유로6 체제로 들어갔다. 유로6에 대응한 유럽 업체들은 높은 연비와 승차감 등 앞선 기술력을 내세웠고, 현대차와 타타대우는 유로6에 맞춰 배출가스 저감장치 등을 추가하느라 가격 경쟁력마저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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