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타워 레코드’ 음반 가게에 진열된 AKB48의 CD. 사진 블룸버그
일본 도쿄의 ‘타워 레코드’ 음반 가게에 진열된 AKB48의 CD. 사진 블룸버그

‘AKB48(포티에이트)’의 소속사 ‘AKS’는 ‘오타쿠’의 성지,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역사를 시작했다. 2018년 현재 아키하바라역에서 이어진 대로변에는 대형 할인점인 ‘돈키호테’ 아키하바라점이 있다. 다른 돈키호테 매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건물 외벽이 AKB48 멤버들의 사진으로 도배돼 있다는 것이다. 이곳 8층에 AKB48가 매일 상설 공연을 하는 소극장이 있다. 이곳이 문을 연 2005년 12월, AKB48는 그저 일본 서브컬처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지하 아이돌’에 불과했다. 정원 250명의 극장에서 열린 데뷔 공연에 멤버들은 단 7명의 관객을 눈앞에 두고 노래하고 춤췄다.

이듬해인 2006년 일본 최고의 예능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는 구보타 야스시(窪田康志), 시바 고타로(芝幸太郎)와 함께 AKB48의 소속 사무소인 AKS를 설립했다. AKS는 공동 창업자 3인의 이름 알파벳 첫 글자에서 따 왔다. 그룹명인 ‘48’ 또한, 멤버 수가 48명이어서가 아니라 창업자 시바의 성을 숫자로 쓴 ‘고로아와세(語呂合わせ·발음이 같은 단어나 이름을 숫자로 표기하는 언어유희)’다. AKS는 연예기획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종합 인재파견 회사’로 등록된 법인이다. AKB48 멤버들은 데뷔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연예기획사와 개별 계약을 맺게 된다.

아키모토는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입장료 1000엔(약 1만원)에 두 시간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고, CD를 사면 들어있는 이벤트 참가권으로 멤버들을 직접 만나 악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운영 방침은 일본 연예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AKS는 AKB48의 이름을 내건 각종 방송을 만들어 밤낮으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했다. 실력이나 경험은 부족하고, 외모도 특출하지 않은 ‘옆집 소녀’들이 노력으로 스타의 길을 걸어간다는 이야기로, AKB48를 ‘국민 아이돌’로 거듭나게 했다.

이와 함께 AKS의 전략은 AKB48 그룹 멤버들을 대상으로 한 총선거(總選擧) 제도로 확장됐다. 자매 그룹까지 합해 300명이 훌쩍 넘는 AKB48에서 지명도가 낮은 멤버는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 어렵다. 이에 대한 팬들의 불만을 다독이는 과정에서 AKS는 ‘선발 총선거’를 실시했고, 지상파를 통해 생중계된 개표 방송은 일본 중의원 선거 방송의 시청률을 웃돌았다. 이 덕에 일류 아이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5대 돔(도쿄·삿포로·나고야·오사카·후쿠오카 등 일본 5개 돔구장 공연) 제패’, 일본 레코드 대상 수상, 여성 아티스트 앨범 판매량 연속 1위 경신 등 숱한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AKS는 AKB48 인기 멤버들의 졸업 후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KS는 이후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NMB48’, 나고야의 ‘SKE48’, 후쿠오카의 ‘HKT48’ 등 일본 각 지역에 AKB48의 자매 그룹을 만들어 ‘로컬 아이돌’ 전략을 펼쳤다. 이 같은 AKS의 지나친 확장 공세에 팬들은 피로감을 나타냈다. CD 1장당 1표의 투표권이 주어지는 총선거는 일부 마니아층이 많게는 수천 장의 CD를 대량 구입하는 사태로 번졌다. 급기야 처치 곤란이 된 CD를 무단으로 투기했다가 적발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며, AKB48는 ‘소수 오타쿠의 아이돌’로 전락했다.


K팝이 일본 연예계 자극

AKS는 AKB48 브랜드 가치가 더 이상 일본 내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는 위기를 맞이했다. 활동 당시의 인기 멤버들은 그룹을 나온 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AKS가 인도네시아, 중국, 대만 등에 자매 그룹을 결성하는 해외 진출 전략을 펼쳤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상하이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SNH48’의 경우 현지 운영사의 계약 위반으로 파국을 맞았고, 대만의 ‘TPE48’ 또한 규모를 크게 줄였다.

무리한 확장과 아베노믹스 출범 후 일본의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것도 AKS에는 위기라는 분석이 있다. 경제학자 다나카 히데토미(田中秀臣) 조치대 교수는 저서 ‘AKB48의 종언(2013년)’에서 “AKB48는 디플레이션에 강한 사업 모델”이라면서 “경기 회복 후 소비자 행동 패턴이 다양해지면 침몰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 바 있다.

최근 일본 음악 시장의 대세는 한류 아이돌이다. 일본에서는 ‘해외 아티스트’ 취급받는 K팝 그룹들의 콘서트가 비싼 입장료에도 매진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트와이스’와 ‘방탄소년단’의 활약상은 일본 연예계에 큰 자극제다. 아이돌을 꿈꾸는 일본 청소년들이 K팝 댄스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를 비롯해 ‘JBJ’의 켄타, ‘크로스진’의 타쿠야, ‘NCT127’의 유타 등이 자국 대신 한국 아이돌로서의 데뷔를 택한 일본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AKS는 한국 CJ ENM과 손잡고 한·일 합작 프로젝트 ‘프로듀스48’에 뛰어들었다. 프로듀스48는 AKB48 그룹에 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계기로 다가왔다. 세계 2위의 시장 규모에도 불구하고 해외 진출의 성공 사례가 드문 일본 음악계와 ‘글로벌 한류’의 기세를 본격적으로 일본에 침투시키고자 하는 한국 음악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AKS와 CJ ENM이 양측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이번 합작이 성사된 계기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무대에서는 체계적인 육성을 통해 실력을 갖춘 ‘완성형 아이돌’이 주류다. 반면 일본에서는 AKB48처럼 팬들과 함께 성장하는 스토리성을 강조한 ‘육성형 아이돌’이 강세를 보인다.


plus point

AKB48 모델의 창시자
아키모토 야스시

AKB48의 창시자인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는 방송작가, 음악 프로듀서, 작사가, 영화감독 등 이력이 다채롭다. 고교 시절 방송국에 보낸 습작 대본이 눈에 띄어 연예계와 연을 맺었다. 추오대 문학부 재학 때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해, 두각을 나타냈다.

만화 주제가의 작사를 담당한 것을 계기로 나가부치 쓰요시, 고이즈미 교코 등 일본 톱스타들의 작사를 맡았다. 1985년부터 여성 아이돌 그룹 ‘오냥코 클럽’ 프로젝트에 참여해 프로듀서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전설적인 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유작 ‘흐르는 강물처럼’은 그에게 작사가로서 부동의 지위를 안겼다.

그의 인생을 건 프로젝트인 AKB48는 이전의 업적을 뛰어넘는 부와 영광을 안겼다. AKB48와 자매 그룹, 라이벌 그룹인 ‘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46’의 거의 전곡을 작사했다. 지금까지 4000여 곡을 작사했고 이 중 약 700곡이 AKB48의 곡이다. 학창 시절, 달리는 열차의 차창 밖, 해 질 녘 풍경 같은 일상을 10대 소년의 관점에서 그려내면서도 여성 목소리로 표현하기를 즐긴다. AKB48의 가사 속 1인칭 대명사가 대부분 남성형인 ‘보쿠(僕)’인 이유다.

아베 정권의 ‘쿨 재팬(Cool Japan)’ 추진위원회, 2020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본 예능계를 석권한 그에게 세계 진출은 숙원이다. ‘48 프로젝트’를 통해 일본 7개 도시와 인도네시아, 중국, 태국, 대만, 필리핀에 자매 그룹을 설립했다.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문턱을 넘지 못한 한국과 높은 벽을 실감하던 세계 시장을 뚫은 한류 아이돌에게 그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진석 ‘오타쿠 진화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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