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호세이(法政)대 경제학과, 고려대 경제학 석사 수료 / 8월 28일 서울 LG트윈타워에서 만난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호세이(法政)대 경제학과, 고려대 경제학 석사 수료 / 8월 28일 서울 LG트윈타워에서 만난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프로듀스48(포티에이트)가 문화 교류로써 한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벽을 낮출 가능성을 보여줬다.”

8월 28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만난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부터 한국과 일본의 실제 교역 규모가 그 잠재력에 비해 작았는데, 프로듀스48와 같은 사례가 두 국가를 가로막고 있는 신뢰 문제를 넘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거리도 가깝고 문화도 비슷하다. 하지만 일본과 경제 협력은 그 잠재력에 비해 활발하지 않다. 양국 간 협력과 분업이 더 필요하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한국과 일본의 교역 규모가 잠재력에 비해 작다”면서 “이는 정치, 사회·문화, 역사적인 다양한 요소의 무역장벽이 있다는 의미로, 미국이나 칠레와 교류 정도보다 작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프로듀스48가 한국과 일본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
“두 나라는 경제 규모나 문화가 비슷하다. 그런 유사성에 비해 교역이나 투자가 활발하지 않다. 두 국가 간에 마음의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프로듀스48를 재밌게 봤던 건 한·일 합작 문화 교류 차원에서 마음의 장벽을 낮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일본은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도 낮고 중국처럼 정부 간섭도 덜한데, (한국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우리 제품에 대한 불안,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가령 아무리 LG전자가 만든 스마트폰 성능이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라왔어도 여전히 일본에서는 애플의 아이폰을 선호한다. 이번 프로듀스48가 일본의 그런 심리적인 요인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프로듀스48뿐 아니라 트와이스 등의 사례를 봐도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한·일 협력 구조로 가고 있다. 국제 분업의 관점으로 보면,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이 만든 소재나 부품을 쓰기도 하고, 일본 회사가 한국 회사 부품을 쓰는 등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인 반목이 심해질 때는 이미 협력하고 있는 관계 외에 신규로 일본과 한국이 함께하는 사업을 기획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있다. 프로듀스48가 한국의 반일 감정과 일본의 혐한 감정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듀스48의 첫 번째 시리즈인 프로듀스101이 처음 나왔을 때 AKB48의 총선거를 따라 했다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찌 보면 ‘원조’ 격인 AKB48와 손잡았다. 한·일 산업 간 교류 양상이 과거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나.
“과거 한국과 일본의 일반적인 협력 모델은 프로듀스 시리즈처럼 한국이 일본의 선진 기술을 배우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기술 수준이 많이 향상됐기 때문에 한·일 관계에서 새로운 모델을 설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일본과 평등한 관계에서 기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할 만한 대표적인 사례가 ‘LG히타치’다. 신뢰관계가 확보된 두 회사가 합작해 회사를 만들었다. 다만 활발한 교류를 위해서는 우리 기업에서 지식재산권 준수에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일본 기업인 사이에서는 예전보다는 덜해도 ‘한국과 같이 일하면 기술을 다 빼앗긴다’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도시바 인수 건을 생각해보면 된다. 반도체 기술의 해외 유출을 우려한 일본 정부(경제산업성)가 도시바 인수전에 직접 뛰어들었다. 일본이 ‘주기만 하는’ 관계가 아닌 ‘주고받는’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협력 구조를 잘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프로듀스48처럼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일본과 합작하면 해외 진출에 유리한가.
“그렇다. 일본 문화 ‘오타쿠(특정 분야를 파고드는 마니아)’가 세계 각국에 있기 때문에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 인구로 치면 미국이 가장 많지 않겠나 싶다. 애니메이션이나 J팝(일본 음악)의 마니아층이 두껍다. 동남아시아는 제1·2차세계대전 때 일본에 피해를 입었지만, 이후에 일본으로부터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대만은 일본에 매우 우호적이다.”

일본이라는 파트너가 왜 한국 경제에 중요한가.
“일본의 수입 규모가 작다고 해도, 해외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이 많아서 그 네트워크를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의 제조 기업이 해외에 많이 나가 있다 보니, 일본과 직접 교역 규모 증가세가 둔화된 부분이 있다. 현재 한국의 수출 국가를 규모순으로 줄 세우면 일본은 4위로 내려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장기 불황을 겪는 일본 정도는 별거 아니다’라는 시각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는 일본 본토 이외의 지역에 대한 수출 파급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의 해외 거점까지 고려할 때, 일본을 경시하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 큰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중국·인도·아프리카까지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본토가 아닌 지역에서 한·일이 협조했을 때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한·일의 제3국 공동 수출·진출 전략도 검토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동남아시아나 신흥국에서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는 나라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이 사업을 공동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 두산중공업이 지난 2014년 말 베트남에서 수주한 1조8000억원 규모 ‘응이손2(Nghi Son 2) 석탄화력발전 프로젝트’는 한국전력공사와 일본 마루베니(丸紅)의 합작회사가 발주처다.”

한국 기업인 입장에서 앞으로 일본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일본은 특수 기술에 강점이 있다. 일본 회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각광받는 특수 기술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회사들이다. 틈새에 강하다. 반대로 한국의 LG나 삼성은 대규모로 확장하는 것에 강하다. 두 나라의 이 같은 특성을 잘 살리면 앞으로 첨단 기술을 상용화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한·일 협력에서 앞으로 우리 기업이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인수·합병(M&A)인데 아쉽다. 일본 기업이 고령화와 저출산 등으로 인해 후계자 없이 폐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문제가 있어 폐업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 전혀 아프지 않은 주삿바늘을 개발한 기업이 있었는데 경영자를 찾지 못해 하마터면 없어질 뻔했다. 이처럼 뛰어난 기술이 있는 중견·중소기업 사장들이 70세 이상의 고령자가 되고 있다. 이 회사들을 사서 기술력을 보완할 수 있다. 그런데 M&A 시장에 한국·중국 기업이 접근하면 일본 경제산업성에서 ‘기술 유출’을 우려하며 방해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이 일본의 진정한 협력자라는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이런 우려가 상당 부분 사라져 한국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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