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클래식술도가 박종대 대표가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밀양클래식술도가 박종대 대표가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스파클링막걸리를 여럿 맛봤지만, 대추가 부재료로 들어간 스파클링막걸리는 처음이었다. 색깔부터가 대추 속살 같은 갈색을 띠었다. 맛이 궁금했다. 그러나, 신중하게 병을 열어야 한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급하게 열었다가는 술이 넘치기 십상이다. 뚜껑을 정말 아주 살짝 열었다 닫았다를 서너 번 반복했다. 그러자, 병 속의 잠자던 막걸리가 깨어나는 게 보였다. 화가 난 듯, 투명 막걸리 병 속을 아래 위로 마구 헤집는 게 아닌가. 금방이라도 뚜껑을 박차고 세상(술병) 밖으로 솟구쳐 나올 것 같았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서울대 독어독문학 
학·석사, 전 조선비즈 
성장기업센터장, 
‘한국술열전’ 저자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서울대 독어독문학 학·석사, 전 조선비즈 성장기업센터장, ‘한국술열전’ 저자

이 모습을 보니, 엉뚱하게도 갑자기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4악장이 생각났다. 화산 용암이 폭발하듯, 합창단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주는 ‘환희의 송가’가 떠올랐다. 괴테와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대문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작품이, 귀가 멀기 시작한 베토벤이 마지막 불꽃을 태워 완성한 교향곡에 실린 곡이 합창교향곡 4악장이 아니던가. 

“환희여, 신들의 아름다운 빛이여,
낙원의 딸이여.
우리는 불에 취해, 신성한 그대의 성전에
발을 들여놓네.”

다행히 대추막걸리는 넘치지 않았고, 맹렬했던 술 기포가 다소 진정되자, 술병을 다 열어젖혔다. 대추 농축액이 들어간 밀양대추막걸리는 어떤 맛일까. 쌀과 대추의 단맛이 잘 어우러진 고급스러운 막걸리였다. 약재로도 많이 쓰이는 대추는 원래 단맛이 강한 편이다. 첫 잔이 다음 잔을 부르다 보니 작지 않은 한 병(800)이 금방 동이 났다. 그런데, 지금껏 맛보지 못한 막걸리였다. 오미자, 딸기, 샤인머스켓 등 갖가지 부재료가 들어간 막걸리를 맛봤지만, 대추막걸리는 처음이었고, 또 맛도 기가 막혔다. 

그런데 대추막걸리의 끊임없이 올라오는 기포가 왜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연상시켰을까. 대추막걸리를 빚는 밀양클래식술도가 박종대 대표의 이야기를 미리 들은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밀양클래식술도가 밀양대추막걸리. 사진 박순욱 기자
밀양클래식술도가 밀양대추막걸리. 사진 박순욱 기자

“밀양클래식술도가의 모든 막걸리는 발효 기간 내내 서양 클래식 음악을 듣습니다. 클래식의 잔잔하고 섬세한 리듬이 술 발효, 숙성 과정에서 효모의 활동성을 깨웁니다. 막걸리 발효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효모가 어떻게 활발하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술맛이 달라집니다.”

20대부터 클래식 듣기가 ‘평생의 취미'였다는 박종대 대표. 그래서 지금도 양조장 한편을 클래식 감상실로 꾸며놓았다. “밤에는 아무래도 이웃 민원이 생길 수 있어 음악 볼륨을 좀 낮추어요. 밤에 음향을 낮추면 신기하게도 막걸리 효모의 활동성이 떨어지고, 소리를 크게 트는 낮에는 활동성이 올라가요.”

경남 밀양의 양조장 밀양클래식술도가. 전국에 1000개도 넘는 양조장이 있지만, 양조장 이름에 클래식을 넣은 양조장은 이곳이 유일하지 싶다. 박종대 대표가 워낙 클래식을 좋아하는 고전음악 마니아다. 최근 방문한 밀양클래식술도가 발효실은 정말, 클래식 음악이 쩡쩡 울리고 있었다. 소곤소곤 이야기는 귀에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다시 박종대 대표 이야기다. “트로트를 들려주기도 하고, 발라드도 틀어봤어요. 그런데 클래식을 틀어주니까 술 발효가 가장 안정적으로 되더라고요. 술맛도 약간 상큼해서 더 맛있는 것 같았어요. 뭐,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식물도, 동물도 음악을 들려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하루하루 익어가는 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양조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저부터가 클래식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요.”

밀양클래식술도가는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신생 양조장은 아니다. 90년 넘는 역사를 가졌다. 박 대표가 양조장을 인수한 것은 2005년으로, 이곳 지명을 따서 처음에는 단장양조장으로 했다가, 2019년에 양조장을 확장, 이전하면서 밀양클래식술도가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름을 밀양클래식술도가로 바꾸기 전에도 ‘클래식 막걸리’ 제품은 있었다. 박 대표가 양조장을 인수한 후 가장 먼저 내놓은 제품이다. 클래식 막걸리는 한 병에 1200원 정도로 착하다. 원료는 국산이 아닌 수입 쌀, 발효제 역시 전통 누룩이 아닌 밀 입국을 쓴다. 

전통누룩 밀양클래식술도가의 효자 상품은, 밑술에 두 번 덧술하는 삼양주인 밀양탁주다. 600mL 한 병에 2000원. 밀양 지역 쌀로 빚는다. 천연 감미료인 스테비올배당체를 일부 넣는다. 밀양클래식술도가 전 제품은 물엿, 설탕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소 드라이한(달지 않은) 맛이 특징으로, 젊은 소비자층이 많은 편이라 한다. 실제로 마셔보니, 묵직하지 않아 부드럽게 잘 넘어갔다. 일주일에 5000병 정도가 판매된다고 한다. 지역특산주 면허로 생산돼, 온라인으로도 살 수 있다. 

밀양클래식술도가 제품 중 가장 인상적인 술은 대추막걸리였다. 술 발효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탄산을 밖으로 배출하지 않고 잘 가둬, 스파클링 막걸리로 만들었다. 800mL 한 병에 1만원, 판매량이 많지 않고, 유통기한도 짧은 편이라, 주문 후 생산한다. 

이곳 양조장은 대추막걸리 외에 사과막걸리도 개발 중에 있다. 예부터 밀양의 얼음골 사과는 당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얼음골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일교차가 큰 편이라서, 높은 당도의 사과가 재배돼 왔다. 또, 강수량은 상대적으로 적어, 과육이 단단하고 산뜻한 과즙이 풍성하다고 알려져 왔다. 그런데, 얼음골 사과막걸리는 왜 아직 나오지 않았을까.

“사과는 신맛이 강한 과일인데, 막걸리 재료로는 쉽지 않습니다. 시제품을 만들어 보니, 유통기한이 10일도 안 가지 뭡니까. 산미가 강하다 보니, 금방 술이 시어 버리는 겁니다. 유통기한이 최소한 한 달은 돼야 상품화가 가능한데, 그래서 고민입니다. 2년 전부터 개발 중인데, 아직 시행착오를 더 겪어야 하는 아이템이 사과막걸리인 것 같습니다.”

양조장을 찬찬히 둘러보니, 발효탱크, 숙성 탱크가 죄다 600L 소용량이 아닌가. 2019년에 확장한 양조장치고는 발효탱크가 큰 게 없는 게 이곳 밀양클래식술도가의 특징이다. 대용량 탱크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박 대표에게 물었다.

“막걸리는 신선함이 생명이라고 봅니다. 또, 저희 양조장은 전국을 대상으로 술을 만든다기보다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술을 빚기 때문에 1만L 같은 대용량 발효탱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생산량이 판매량보다 턱없이 많으면, 선도 관리가 그만큼 어려워지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매일 마시는 우유를 매일 만드는 심정으로, 저희는 막걸리를 자주 만들어서 매일 고객들에게 신선하게 공급하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