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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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조지 워싱턴, 해리 트루먼, 샤를 드골, 더글러스 맥아더⋯. 이 저명한 역사적 인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군에서 장군을 모시는 전속부관(aide de camp)을 했다는 점이다. 전속부관을 하며 큰 인물을 모셔봤고 일찍 리더십에 눈떴으며 정무 감각을 기른 것이 역사적 인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전속부관은 어떤 직책인가. 전속부관이란 용어는 프랑스에서 나왔다. 장군이나 제독 등 장성급 군인 또는 국가원수와 왕족의 개인 참모로서 일상적 문제에서 비서 역할을 하는 장교를 뜻한다. 장군과 전속부관(보좌관 포함)은 업무상 긴밀하게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공동 운명체가 되기도 한다.

1983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버마(현 미얀마) 방문 중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이 주도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당시 이기백 합참의장의 전속부관인 전인범 중위가 아수라장이 된 폭파 현장으로 뛰어들어 상관을 업고나와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 당시 대통령을 수행했던 장차관급 18명 중 유일한 생존자가 이기백 장군이다. 전인범은 25세로, 막 중위로 진급했을 때 제1군단장 이기백 장군의 전속부관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기적 같은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그는 군에서 중장까지 진급하며 많은 업적을 남기고 특전사령관을 끝으로 전역했다. 전역식에 참석한 이기백 국방부 장관은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평생 내 생명을 구해준 전인범 장군을 고맙게 생각하고 내 모든 성의를 다해 아껴왔습니다.” 

전속부관이나 보좌관을 하다가 비극을 맞이한 경우도 적지 않다. 육사 출신 박흥주 대령은 촉망받는 엘리트 장교였다. 중령 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수행 비서관으로 발탁됐다. 그 후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1979년 10·26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40세였다. 일선 연대장으로 보내달라고 몇 번씩 간청했으나, 몇 달만 더해 달라고 하며 미루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그가 수감됐을 때 교도소 벽에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글을 쓴 것이 알려져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 인하대 경영학 박사, 현 멘토지도자협의회 회장, 전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 인하대 경영학 박사, 현 멘토지도자협의회 회장, 전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나도 전속부관을 한 경험이 있다. 1975년 공군 소위로 임관했다. 일선 비행단 기지전대에 근무 중 비행단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부관이 된 것이다. 당시 부관을 하고 싶어 하는 장교보다는 기피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장교는 출퇴근하며 자유 시간이 보장되는데 부관을 하면 부대 내 관사에서 거주해야 하고 365일 24시간 근무 체제로 바뀌기 때문이다. 

나 또한 거부감이 컸는데 비행단장을 면담한 후 생각이 바뀌었다. 문무 겸비에 지덕체를 갖춘 훌륭한 장군이었다. 부관 근무를 하며 내 인생관이 통째로 바뀌었다. 존경받고 사는 것보다 존경할 대상이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마음이 변하니까 부관 업무의 단점이 모두 장점으로 바뀌었다. 일찍 출근하는 것이 즐거웠고 퇴근 시간이 빨리 오는 것이 아쉬웠다. 하루하루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지는 걸 느끼며 스스로 감동했다. 휴가도 자진 반납하고 상사를 잘 모셔 부대가 발전하고 나라가 잘되기만을 바라게 됐다. 인생관, 국가관, 사생관이 새로 생겼고 리더십, 사고력, 의전 기획력을 키울 수 있었다. 내가 모시던 장군은 그 후 한미연합사 초대 정보참모부장 겸 군사정전위 한국 측 수석 대표, 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 등을 역임했다. 나는 만 3년간 장군을 모시며 큰 보람을 느꼈고 성장했다. 전역 후에도 평생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며 살고 있다.

장군과 전속부관은 밀접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다. 서로 운명에 영향을 끼친다.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일까.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존중과 신뢰다. 둘째는 존경과 충성심, 성장 지원이다. 셋째는 절제된 친밀감이다. 장군과 전속부관은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계급에 충성하는게 아니라 훌륭한 지휘관에게 충성하는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장군은 전속부관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너무 친밀해져 과도한 사적 관계로 흐르면 안 된다. 장군과 전속부관은 단순한 업무 관계를 넘는 인연이다. 상호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컬래버레이션 관계다. 동서고금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다. 부관이 장군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장군이 전속부관을 선택하는 것이다. 일단 잘 뽑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