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제5의 메이저 대회’라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미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의 17번 홀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파 3홀’로 꼽힌다. 150야드 이내로 세팅돼 웨지나 짧은 아이언으로 공략할 수 있어 언뜻 쉬워 보이지만 ‘악마의 홀’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 사방이 연못으로 둘러싸인 아일랜드 홀인 데다, 그린이 거북등처럼 솟아 있어 그린에 맞은 공도 튕겨 나가기 일쑤다. 바람의 방향과 속도가 수시로 바뀌어 클럽 선택도 까다롭다. 매년 프로 골퍼와 주말 골퍼의 공 12만 개가 물에 빠진다.
메이저 타이틀 보유자들이 컷 탈락하는 코스
2025년 대회는 악천후로 경기가 지연되면서 연장전을 월요일인 3월 17일(이하 현지시각) 오전 9시에 열었다. 골프판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로 불렸던 로리 매킬로이(36·북아일랜드)와 JJ 스펀(35·미국)의 대결은 매킬로이의 승리로 끝났다. 승부는 그린이 물로 둘러싸인 ‘아일랜드 홀’인 17번 홀에서 끝났다. 130야드 짧은 거리였지만 스펀의 티샷이 물에 빠지면서 트리플 보기를 하고 말았다.
최진하 전 KLPGA투어 경기위원장은 “17번 홀은 우연히 만들어진 세계 골프의 보석 같은 명작”이라고 했다. 그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킹스칼리지런던 대학원을 수료한 정치학도로 출발해 출판 업계에서 골프의 역사와 규칙에 흥미를 느껴 골프 박사가 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TPC 소그래스의 스타디움 코스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첫째, TP-C(Tournament Players Club)라는 용어는 소위 프로 대회(Tournament)에 출전하는 선수(Players)를 위해 만든 전용 코스를 의미한다. 현재 PGA투어에는 30여 개의 TPC가 조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최초로 만든 코스가 TPC 소그래스다. TPC 소그래스에는 PGA투어의 본부도 들어서 있다. 둘째, 스타디움 코스라는 용어는 갤러리(미국에서는 관람객이라는 의미로 spectators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가 최고의 프로가 경연하는 장면을 직관할 수 있도록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코스 곳곳에 조성된 코스를 뜻한다. 의자가 계단식으로 들어차 있는 스탠드 좌석이 아니라 잔디 좌석이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1974년부터 열렸다. 원래 대회 명칭은 토너먼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었다. 1987년부터 지금처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으로 불리고 있다. 1982년부터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에서 개최되고 있다. 1980년에 개장한 스타디움 코스에서 열린 1982년 대회에서 아놀드 파머, 니클라우스와 트래비스 등 당대의 메이저 타이틀 보유자들이 컷 탈락했다.
피트 다이와 앨리스 다이 부부가 설계한 스타디움 코스에 대한 출전 프로의 불만과 악평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중 압권은 마스터스 우승자인 벤 크렌쇼의 평가다. 벤 크렌쇼는 스타디움 코스를 다스 베이더가 만든 코스라고 단언했다. 스타디움 코스의 설계자인 피트 다이를 스타워즈의 대표 악역인 다스 베이더에 비유했다. 점잖은 신사의 대명사로 통하는 톰 왓슨도 스타디움 코스가 농담(joke) 같다고 평한 바 있다.

3 JJ 스펀이 3월 17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골프 토너먼트 플레이오프 라운드에서 17번 홀에서 티샷 후 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AP연합
4 JJ 스펀을 상대로 플레이오프를 치른 끝에 우승한 매킬로이가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습지대 정글이었던 땅, 우연히 만들어진 명작
TPC 소그래스가 들어선 지역은 방울뱀이 득실대던 습지대 정글이었다. PGA투어가 지역의 독지가로부터 단돈 1달러에 기증받은 땅이었다. 습지를 호수로 만들고 흙을 퍼 올려 언덕을 만들면서 갤러리 친화적인 코스를 조성했다. 17번 파 3홀은 한쪽 면만 조그마한 연못이 있는 단순한 홀로 설계되었다. 우연히 17번 홀의 퍼팅 그린 예정 부지 주변에만 양질의 모래가 있어서 파내어 다른 홀에 사용하다 보니 코스가 완성될 즈음에는 분화구처럼 그 주변이 넓고 큰 공터가 생겨났다. 설계에는 없던 난감한 상황에서 앨리스 다이가 공터를 물로 채워서 아일랜드 그린으로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스타디움 코스의 시그니처 홀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우연히 17번 홀 그린이 사방으로 물로 채워졌다. 실제로 섬(island)은 아니다. 한반도처럼 반도(peninsula) 모양이다. 퍼팅 그린으로 접근하는 통로가 가느다랗게 조성되어 있어서 다른 홀과 연결되어 있다.
퍼팅 그린은 사과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다. 앞뒤와 좌우 폭은 30야드가 안 된다. 처음 설계대로 그린 뒤쪽이 물로 향하도록 내리막 경사로 만들어졌다면 경기가 상당히 지체되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설계와는 다르게 그린 뒤쪽이 올려졌다. 초기에 바람 없는 날에 볼을 네 개씩이나 물에 빠뜨린 프로는 바람이 불면 17번 홀은 경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대회가 취소될 지경이라는 불평을터뜨렸다. 홀에서 최악의 점수는 12타로, 기준 타수보다 9타나 더 쳤다.
17번 홀은 150야드 이내로 세팅된다. 대체로 137야드에서 147야드로 세팅된 티잉 구역에서 프로는 웨지나 9번 아이언으로 티샷한다. 그렉 노먼은 이 홀을 142야드로 세팅된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파 3홀로 꼽았다.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에서 가장 어려운 홀은 237야드로 세팅되는 8번 파 3홀이다. 이 홀에서 프로는 페어웨이 우드로 티샷하기도 한다.
17번 홀은 전형적인 벌칙형 홀이다. 티샷이 갈 곳이라곤 세 군데뿐이다. 그린에 볼을 올리지 못하면 조그만 항아리형 벙커나 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관건은 바람이다. 티잉 구역에서 볼 때 그린 주변의 물이 잔잔하면 맞바람이 부는 것이고, 물결이 친다면 뒤바람이 부는 것이다. 그러나 오른쪽 호수 위에 서 있는 큰 나무 때문에 공중의 바람은 휘몰아 돌아 그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최대 시속 48㎞의 강풍이 몰아친 올해 3라운드에서 17번 홀은 평균 3.36타로 난도 3위로 치솟았다. 바람은 이 홀에서 난도를 결정하는 열쇠다.
마지막 한 홀만 남겨 놓은 17번 홀에서의 샷 실수는 리더보드에서 탈락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우승자라면 137야드 거리에서의 웨지 샷 테스트를 통과해야 자격이 있지 않으냐는 반론도 나온다. 라운드마다 평균 12개의 티샷이 물에 빠진다. 50개의 볼이 물에 빠진 적도 있었다. 최고의 프로가 곤경에 빠지는 장면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린에 티샷을 올린 프로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장면은 갤러리와 시청자를 웃음 짓게 한다.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이 17번 홀에는 12대 이상 카메라가 설치된다.
TPC 소그래스의 스타디움 코스 17번 홀은 페블비치 7번 홀, 오거스타 내셔널의 12번 홀에 당당하게 견줄 만한 명작이다.